. 세종대왕과 세종시대
1. 세종대왕은 누구일까?
- 이름은‘도’이며, 자는 원정(元正), 시호는 장헌(莊憲)이다. 태종의 셋째 아들로써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의 소생이다. 비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의 딸 소헌왕후(昭憲王后)이며, 1408년에 충녕군(忠寧君)에 봉군, 1412년에 대군이 되었으며, 1418년(태종 18년)에 형인 양녕대군 대신 왕세자에 책봉되어 그 해 8월 22세로 양위를 받아 즉위했다.
즉위 후, 많은 업적들이 있으나 여기서는 과학기술 분야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를 친히 고안하고 장영실 이천 등으로 하여금 해시계, 물시계, 혼천의(渾天儀) 등 각종 과학기구를 발명 제작하여 천체를 측정하고, 역서(曆書)를 만드는 등 이전의 왕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업적들을 남겼다.
2. 세종시대
- 한국사회에 있어서 세종 시대는 신왕조 개창의 작업이 완전히 마무리되고 자주적 문화를 꽃피운 문화의 황금기였다. 세종 시대는 안으로 통치제도의 틀이 정비되어 사회가 안정되어 크게 발전하고, 밖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영토를 넓힌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한 시기였다. 또 이때에는 한글이 창조되어 민족문화 발전의 기틀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전통문화를 전반적으로 체계화시킨 점에서 국학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고, 특히 과학기술분야에도 커다란 발전을 이룩한 시기였다.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기인 측우기를 발명하였고, 많은 천문기구들을 경회루에 설치해 천문관측을 하여‘칠정산’이라는 역법서를 편찬하여 후에 일본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무기기술 개발에도 상당한 영구성과가 있었는데, 1448년에 완성된‘총통등록’은 당시까지의 무기들을 집대성한 것이다. 또한 ‘혼의’,‘혼상’,‘간의’등의 천문기구와 자격루 등은 당시의 과학기술의 수준이 상당했던 것을 말해 준다.
한편, 이러한 문화적, 과학기술적 성과들은 세종 시대 전반을 규정하는 여러 사회 정치적 조건들과 연결 지어 생각해볼 때 그 역사적인 의미를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세종 시대는 다른 어느 시대와도 달리 안정된 왕권과 정치질서를 유지했고, 새로이 국가이념으로 채택된 유학이 그 사상적 실천을 모색하는 시대였다. 그리고 유교 정치의 진전은 곧바로 유교적 교양을 갖춘 관료들이 사회질서의 중심에 서서 사회를 이끌어 가는 유교관료 사회로의 진전을 의미했다.
. 세종시대의 과학
- 세종 시대의 과학기술 그 현대적 의미, 박성래 著, 한국과학재단 編, 1997
- 세종 시대의 과학, 전상운 著, 세종대왕기념사업회 編, 1986
- 네이버(www.naver.com)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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