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河南) 남양(南陽) 출생
자 ; 퇴지(退之),
호 ; 창려(昌黎)
시(諡) ; 한문공(韓文公)
당대의 문장가, 정치가, 사상가
당송팔대가 중 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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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경의 4남 중 막내아들
3세 때 아버지를 잃고, 장남 한회와 형수 정씨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자람.
- “七屬文, 意語天出”, “七好學, 言出成文”
강남으로 이주. 본격적으로 학문을 시작
- ‘육경’과 ‘백가’의 저서들을 섭렵합
3번의 낙방 끝에 25세에 진사에 합격. 공직생활을 시작함.
이부시험에 합격하여, 35세 때 사문박사(四門博士)로 임명. 곧, 감찰어사 (監察御使)가 됨.
- 사설(師說) 저작
803년, 감찰어사가 되었을 때, 전국적인 기근 상태에서 덕종(德宗)에게 상소를 올렸다가, 도리어 산양 지방의 현령으로 좌천.
- 원도(原道) 저작
806년, 헌종(憲宗)이 즉위하여, 국자박사(國子博士)에 임명 되고, 813년, 사관수찬(史館修撰) 으로 임명되어 완성.
817년, 재상인 배도의 행군사마(行軍司馬)로서 오원제 토벌에 참여해서 공을 세우고, 형부시랑(刑部侍郞)이 됨.
819년, 52세에 황제가 불골(佛骨)을 모시려 하자 이에 건의하여 조주(潮州) 자사(刺史)로 좌천.
목종(穆宗)이 즉위하여 국자제주 (國子祭酒) 로 임명됨. 곧, 병부시랑(兵部侍郞)이 되고, 공을 세워 인사를 책임지는 이부시랑 (吏部侍郞) 이 됨.
824년, 관직을 그만두고 요양생활을 하다가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뜸. 경종이 한유의 죽음을 듣고 예부상서(禮部尙書)로 추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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