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시’는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처음에 주인공 마리오는 간신히 읽고 쓸줄 알 정도로 무식하며 순박하다. 당연히 시라는 것에도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러한 그가 네루다의 시를 읽고 ‘인간으로 살기도 힘들다’라는 구절에 공감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시는 바로 ‘느낌’이라고 네루다의 입을 빌려서 말한다. 그 느낌이라는 것은 비단 시인 자신의 감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특별한 한 개인의 감정이 아닌, 그것은 칠레의 공산주의자도 이탈리아의 가난한 우체부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넓은 자장을 가진 ‘느낌’을 말한다. 어쩌면 시인이란 다른 사람들이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혹은 표현할 방법을 몰랐던 그런 느낌들에 적합한 단어를 골라내어 표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한 구절 한 구절이 바로 그 감정들을 안으로 담아만 왔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을 표현하는 방법, 그것이 바로 ‘은유’라고 이 영화에서는 이야기한다. 네루다가 말하듯이, 은유란 바로 ‘느낌’이다. 즉 느낌이 곧 시이고 은유인 것이다. 그 느낌에 적합한 단어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은유이다. 그러나 처음에 마리오는 그 은유는 의도적인 것, 그리고 오직 시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네루다는 그렇지 않다고 가르쳐준다. 그러자 마리오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물, 불 바람 같은 것들이 바로 ‘이 세상’의 은유인 것이냐고. 만약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분명 우리 주위에 있는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이 세상을, 다른 말로는 이 세상의 섭리를 표현하는 은유이며 이 세상은 거대한 하나의 시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거대한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마리오의 시선으로 시를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맨 처음 마리오에게 시는 여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가 조금씩 시와 은유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고, 곧 그가 베아트리체를 향한 강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그는 자신의 마음을 은유로, 시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이는 지금까지 부족한 어휘 속에서 결코 말하고 싶었던 것을 말하지 못했던 상황과 반대로 그는 자신 마음 속의 정열을 아름다운 시로 베아트리체에게 전달하였기에 그는 그녀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네루다가 떠나고 나서, 섬의 아름다움을 녹음한다. 딱히 어떠한 아름다운 단어로 무엇인가를 치장하고 비유하는 것은 아니지만, 즉 네루다가 그에게 가르쳤던 은유는 아니지만, 그가 섬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서 열심히 고르고 녹음한 그 소리들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그 자체의 배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한 편의 시라고 볼 수 있었다. 이는 어떤 의미로는 환유라고 볼 수 있다. 네루다에게서 은유를 배운 마리오가, 자신이 생각하는 섬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은 무척이나 환유적인 것, 즉 이 세상의 소리들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면서 나열하는 것이었다. 또 이것을 시라고 볼 때, 자신의 강렬한 열정과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네루다의 시를 빌려와 썼었다면, 그는 이제 세상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이 경우에는 고향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과 네루다를 향한 소박한 존경이 깃든 ‘시’를, 비록 화려하고 잘 조탁된 언어는 아닐지라도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이렇듯 마리오의 변화에서 느낄 수 있듯이, ‘시’는 무척이나 일상적인 것이면서도, 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칠 만큼 강력한 것이기도 하다. 마리오는 시를 통해서 사랑을 하고 아내를 얻고, 시를 통해서 세상을 지각하게 되면서 사회의 부조리에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운다. 물론 네루다가 공산주의자인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시를 배움으로써 사물을 다시 한번 보게 되고 세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탐구하게 되면서 점차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고 비판 의식이 자라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즉, 에서 말하는 ‘시’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느낌의 표현임과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다지 대단하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라, 무척이나 일상적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 영화는 마리오의 모습을 통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비판
먼저 이 영화에서는 마리오가 무척이나 순진하면서도 무식한 인물인 것처럼 나온다. 그리고 마리오가 그토록 시에 무지한데도 불구하고 네루다에게서 시를 배워가면서 점점 더 깨우쳐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마치 누구나, 무지하고 가난한 그 누구라도, 시를 배우고 즐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부는 아름다운 네루다의 연시를 보고서도 오히려 음란한 행동을 표현한 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마리오가 베이트리체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은유를 듣고서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이는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만약에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시는 모두에게 공감되는 하나의 ‘느낌’이라고 한다면, 왜 그 느낌은 과부에게는 전달되지 못했을까? 분명히 과부가 남자를 경계하는 마음이 지나쳐 과민 반응한 것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의 아름다움을 왜 알아보지 못하는 지에 대한 설명이 되지는 못한다. 그리고 네루다의 연시를 보고 또 언짢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또 있는데 바로 카톨릭 사제가 바로 그렇다. 카톨릭 사제는 분명히 글을 읽을 줄 아는 지식인 계급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큼 세상 물정에 무지하다. 공산주의자들이 아기를 잡아먹는다는 소문을 그대로 믿어버림은 물론이고 고루하고 경직된 편견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시의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들이 시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시 속의 감정과 느낌에 공감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는 다른 의문으로도 나아가게 된다. 시라는 것처럼 기호가 철저히 갈리는 문학장르도 드물다. 수많은 시인들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만 그 모든 시인들을 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없다. 분명히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이 있고 싫어하는 시인이 있다. 분명히 문학적으로는 높게 평가 받는 시임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자신의 맘에는 들지 않는다거나, 혹은 평가는 높지 않아도 마음에 와 닿는 시들이 있다. 이 차이는 도대체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시라는 것이 모두에게 공감될 수 있는 느낌을 다룬다면, 왜 시마다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들이 갈릴까? 한 시를 가지고 그 시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과 공감할 수 없는 사람이 왜 갈리는 걸까? 이는 어쩌면 시는 무척이나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본디 모든 문학장르가 개인의 성향, 주관, 경험 등에 감상이 달라지게 되지만 소설처럼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시의 경우 특히나 그렇다. 이 영화에서는 시를 일개 우체부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인 느낌’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사실 그 느낌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주관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라는 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를 주관적인 것으로만 파악한다면 그것 또한 위험이 있다. 분명히 어떤 시가 여러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좋은 시라고 인정을 받는 이유에는, 그 시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설득력,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시’라는 것은 주관과 객관, 혹은 개인과 보편 사이의 미묘한 경계선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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