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언어와 문자의 변화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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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진왜란 언어와 문자의 변화에 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근대국어는 조선 후기의 국어로써 편의상 1592년 임진왜란의 발발 직후로부터 1894년 갑오경장까지로 시대구분을 하고 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같은 전란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사회와 문화 전반, 그리고 언어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내적으로는 상업, 수공업, 농업에서의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외적으로는 두 차례의 대란을 포함한 잦은 오랑캐의 침입으로 인한 서양문물의 접촉이 자극이 되어 새로운 학문과 문학이 대두됨과 함께 일본어 계통의 어휘가 대량으로 유입되는 양상을 보인다. 또한 근대국어의 시기에 한글이 더욱 널리 보급되었고, 한자가 아닌 한글을 통한 문학 활동도 활발해졌다.
근대국어에서 현대국어의 여러 가지 특징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 근대국어는 중세국어에서 현대국어에 이르는 하나의 과도기적인 국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임진왜란을 통한 중세국어에서 근대국어로의 변화 모습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전쟁 이후 점차적으로 언어에 거센 의미가 강해졌으며 ‘여유’를 느낄 수 있었던 과거 언어와 다르게 16~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언어는 점점 사동의 강조가 두드러지게 변한다. 또한 부패한 관료의 착취 현상과 도적, 왜구, 지주와 농민 등 여러 가지 암울한 시대의 환경이 언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는 민중 개별적인 인식이 언어 구조에 영향을 주게 된 것이며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변이도 이루어진 것이다.
발음에도 왜란을 겪으면서 변화가 나타나는데, 전쟁 이후 삶이 팍팍해져서 센 발음을 선호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또, 17세기부터는 음운, 문법 등에서 앞 시대의 국어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모음 체계상에 변화가 일어났으며, 여러 문법 현상들이 사라지거나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모음조화는 조선 전기 국어에서는 대체로 엄격히 지켜졌으나, 임진왜란 이후에 ‘ㆍ’의 음가가 동요되면서부터 현저하게 파괴되었고, 성조의 소멸도 나타났다고 한다.
임진란 이전의 문헌과 이후의 문헌들 사이에는 문자체계와 정서법에 판연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임진란 이후에 15세기 중엽이래의 정서법의 전통은 큰 혼란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미 그 전통을 지킬 수 없을 만큼 언어가 크게 변화하여 있었고, 또 임진란이란 대전란이 그러한 전통과의 단절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임진란 이전과 이후의 문헌 사이의 문자 체계상의 중요한 차이로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첫째로는 방점이 완전히 사라졌다. 16세기 후반의 일부 문헌에 이미 방점을 찍지 않는 경향이 나타났었는데 17세기 초엽부터는 이것이 일반화되었던 것이다. 둘째로 ,자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리하여 17세기 문자체계는 사실상 25자 체계로 되었던 것이다.
셋째는 어두 합용병서의 혼란인데, 중세에는 ‘’,’’,’’세가지 합용병서가 존재했는데 ,은 소멸하였다고 한다.
음운에서도 변화가 나타나는데, 17세기 후반에 ㅋ으로 합류되긴 하지만 17세기에 ㅎ의 된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구개음화는 I,y앞에서 ‘ㄷㅌ,ㄸ’이나 ‘ㄱ,ㅋ,ㄲ’이 ‘ㅈ,ㅊ,ㅉ’로 변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음운변화 중에서 이러한 구개음화가 근대국어로 넘어오면서 생기기 시작하였다.
근대국어 시기에는 특히 서구 문물이 본격적으로 전래되면서 이와 관계되는 어휘가 급격히 늘어났다. 하지만 서구와는 직접적인 접촉이 아닌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 간접적이었기에 외래어 역시 중국, 일본계 언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때 특히 창구 역할을 한 것이 중국이었기 때문에 중국어를 거쳐 국어에 유입되는 양상을 보였다. 한자어의 지속적인 증가는 근대국어 어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미 중세국어 시기에도 한자어의 수는 굉장히 많았다. 한문 중심의 문자 생활 때문이었다. 따라서 중세국어 당시에 사용했던 한자어 대부분이 근대국어 시기에도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자어의 차용은 늘어나고 한자말을 새로 만들어 쓰게 됨으로써 결국 우리의 고유어까지 한자어로 대체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