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로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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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로게이트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써로게이트
$줄거리
영화 제목인 써로게이트는 대리, 대행자 등의 사전적 의미를 가졌다. 극중에서 리오넬 칸트 박사라는 한 과학자가 인간의 존엄성과 기계의 무한한 능력을 결합하여 발명한 대리 로봇 즉 써로게이트를 발명한다. 이 로봇은 인간은 안전하게 집에서 가만히 누워있고 인간이 정신으로 대신 이 로봇을 원격조종을 하는 형식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100%안전한 삶을 영위하고 거의 인간과 흡사한 로봇을 통하여 완벽한 육체를 가지고 자신감있게 자신의 삶을 살아 나간다. 그러나 100% 안전하다고 장담했던 써로게이트가 공격을 당해 그 사용자가 죽음을 당하는 전대미문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 살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그리어 요원과 피터스 요원이 등장하여 살인 사건의 배경을 파헤쳐 나가다가 써로게이트를 공격하여 인간을 죽음까지 몰고가게 되는 무기를 만든 곳이 군사시설에서 시행 되었고 그 무기를 만드는데 공헌을 한 자들이 써로게이트의 로봇을 만드는 회사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이들은 이무기를 써로게이트의 창시자인 리오넬 칸트 박사를 죽이기 위해서 그무기를 사용했다가 그의 아들이 죽게 되었던 것이다. 이 리오넬 칸트 박사는 써로게이트 창시자이지만 써로게이트를 우리의 사회에서 몰아내자는 운동을 하여 회사에서 쫒겨나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다. 박사는 이 무기를 이용하여 써로게이트를 조정하는 네트워크의 메인컴퓨터에 접속해 모든 써로게이트의 사용자를 없에고 써로게이트가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그리어 요원이 제지하게 된다. 그리어 요원도 써로게이트를 사용하고 있지만 써로게이트로 인해서 아내의 실제를 만나기가 힘들고 아내의 로봇과 정신만 만나게 되어서 점점 써로게이트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되고 있었다. 그러한 그는 박사의 이러한 행위를 제지하면서 모든 써로게이트를 조정할 수 있는 메인컴퓨터를 꺼서 이사회에서 써로게이트를 몰아내어 다시 인간이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게 하면서 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요즘 우리의 모습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 인터넷의 등장으로 자신을 인터넷 속의 아바타나 아이디에 숨기면서 다른 사람을 대한다. 예전에는 시장을 보러가거나 게임이라는 것이 흔하지 못해서 아이들과 놀아도 밖에 나가서 다같이 뛰어 놀수 있는 활동적인 놀이를 했었는데 요새 아이들을 보면 거의 자기 방에 들어가 게임속의 친구들과의 삶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 속에서 인간관계를 배우고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이렇게 아이들이 자라면 커서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문득하곤 한다. 그러한 모습을 이 영화속에서도 잘 나타난다. 주인공은 로봇의 편안함을 알지만 결국에는 사람과 사람의 그 신체적 접촉과 기계의 딱딱함이 아닌 인간의 따뜻함을 그리워 하게 된다. 이러한 현재의 우리의 모습도 언젠가는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사는 그러한 세상을 그리워 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영화 같아서 좋았다.
$ 내가 느낀 영화에서의 철학적 주제
이 영화에서는 심신이원론과 심신일원론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써로게이트라는 로봇은 인간의 육체를 대신하는 존재이다 이 육체는 인간의 정신이 조종을 하는데 이것은 심신이원론적인 관점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심신이원론은 철학에서 정신과 육체가 서로 다른 종류의 실체라는 전제에 바탕을 둔 이론이다. 결국에는 정신과 육체는 다른 종류의 실체이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정신이 로봇이라는 육체를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인간은 정신과 육체의 통일이며, 정신과 육체는 송과선에서 상호작용하는 서로 다른 두 실체이다. 송과선은 두뇌의 기관으로는 쌍을 이루지 않은 유일한 기관이므로 정신과 육체의 합일점임에 틀림없다고 데카르트는 추론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감각기관에 미치는 작용 하나하나가 신경관을 통해 미세한 물질을 송과선에 전달하여 독특한 진동을 일으키고, 이 진동이 감정과 격정을 유발하여 육체의 작용을 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원론적 주장은 몸과 마음의 상호관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특성은 순수 물리적인 결과라고 주장하는 진화론이 발달하면서 점점 설득력을 잃게 됐고, 이제는 몸과 마음이 명확하게 나눠질 수 없다는 ‘심신일원론’이 학계에 지배적이다. 일원론 내부에서도 여러 입장이 나눠져 있어 여러가지 논의가 아직 진행 중이다. 18세기 포이에르바하 이후 유물론은 다윈의 진화론에 힘입어서 인간의 정체 해명을 위한 탁월하고 결정적인 관점으로 파악되었다. 유물론적 관점에서 심신수반론이 19세기 말에 등장한 심리과학의 근본적 입장으로 등장한다. 심신수반론은 20세기 중반 이후에 의학과 인공두뇌에 대한 연구의 탁월한 성과에서 유물론적 관점을 강화하고 있다. 초기의 유물론자들이 영혼의 실체성을 부정하는 데에 머물고 있다면, 현대 심리과학자들은 영혼의 실체성 뿐만 아니라 영혼적 작용의 의미마저 부정하고 물리적 현상으로 간주하는 극단적 입장을 가지기도 한다. 예컨대 뇌파연구에 근거한 인조두뇌공학과 유전생명공학자들은 영혼적 능력을 신체적 능력으로 분석한다. 이러한 관점으로 인하여 인간은 육체와 정신의 분리에 있어서 자괴감을 느끼고 정신과 육체의 하나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을 이 영화에서는 써로게이트의 창시에서 인간의 본연의 모습인 심신일원론의 모습을 찾아가면서 요새 우리가 아바타라는 또 다른 육체를 내세워서 심신이원론적 모습에서 벗어나 예전의 모습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을 통해 인간의 본연적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 된다.
$ 영화에 대한 나의 감상
이 영화는 우리의 가까운 미래에 실현가능한 아주 현실적인 영화 같다. 나라면 과연 주인공의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나는 육체적 편안함을 버리고 다시 육체적 고통의 세계로 돌아갈 것인가?? 만약 우리의 세계가 저렇게 된다면 나의 육체는 집에서 누워만 있고 나의 정신으로만 로봇을 조종해서 나의 삶을 영위해 나간다면 나는 과연 나인 것일까? 그것은 단지 내가 원하는 모습의 껍때기가 아닐까?? 과연 우리가 저런 상황이 올 수 있는 환경에 처해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써로게이트?? 인간의 육체?? 인간이 이미 기계가 없으면 더 이상 살기가 힘든 지경에 와있다. 그러한 인간이 기계를 버리는 날이 올지가 의문이다. 어떤 날에는 기계의 소리를 들으면 저 기계들을 다 없에 버리고 싶지만 어디를 급하게 가야하는데 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을 봤을 때는 과연 기계가 없는 세상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기계를 버리고 원시적인 모습으로 돌아 가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너무 기계에만 의존해 있고 그러한 기계가 없으면 자신을 내새우지도 못하고 자신을 지키지도 못하는 그러한 나약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감독은 기계에 너무 의존해 있는 우리의 나약한 모습을 비판하면서 예전에 인간의 강인한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라면 주인공의 상황에서 어떻게 선택을 할까 라는 진지한 의문을 던져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