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의 성립
정한론의 대두
『고사기』『일본서기』의 신공황후 전설
1949년 末松保和에 의한 남한경영론
근거 ☞ 일본서기, 광개토왕릉비문, 송서
한계 ☞ 고사기, 일본서기의 신빙성 부족
광개토왕릉비문의 탈자
고고학적 유물의 부재
기마민족 정복왕조설
1949년 江上波夫에 의해 주창된 설
『일본서기』의 불확실성 비판
고고학적 자료에 의한 고분시대 구분
만주→한반도→일본으로 온 기마민족에 의한 문화의 변화
무력에 의한 일본 내 통합 및 임나경영
백촌강 전투 이후 경영 포기
한계 ☞ 기존입장고수, 문헌고증문제, 바다를
사이에 둔 연합왕조의 가능여부
일본열도 내 분국설
주체사관에 입각한 식민주의 역사관 분쇄
1966년 북한 역사학자 김석형이 주장함
한일 양국의 고고학적 유물에 근거를 둠
‘조선식 산성’ ☞ 한반도계통의 분국들이 정치,군사적 거점을 영위하던 유적
임나일본부는 야마토가 기비 지방의 임나소국에 설치한 지배기관이었음
한계 ☞ 관련 사료의 사실을 일본열도에 국한함에 따라 한반도 내의 가야사를 포기하는 결과 초래
위왜 자치집단설
1973년 井上秀雄에 의해 주창된 설
일본서기의 사료 중 6C이전은 가치 없음을 증명
항해 수송능력을 들어 분국설을 비판
임나일본부를 일부 왜인과 다수 위왜인의 정치세력으로서 현지의 이해관계를 우선시 하는 독립소국으로 파악
의의 ☞ 일본학자의 연구 중 왜왕권의 군사정벌에 의한 임나지배를 부인한 최초의 연구
한계 ☞ 고고학적 증거의 부재
백제군 사령부설
1970년대 천관우에 의해 주창된 설
일본서기의 편찬자에 의한 기록의 변조를 주장
국가 간의 대결구도를 제시하여 임나일본부를 백제가 가야를 지배하기 위한 기구로 파악
의의 ☞ 일본서기를 비판적 이용하여 왜 중심의 임나지배설에서 벗어남, 조기 가야와 만기 가야의 중심을 제시함
한계 ☞ 고고학적 유물에 드러나는 가야문화의 독자성에 대한 이해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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