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남조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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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시인 김남조분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김남조(1927~ )
1. 생애
김남조는 1927년 경북 대구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13세까지 대구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1940년 아버지의 사업 관계로 가족들이 모두 일본 후꾸오까로 이주하게 되어 1944년까지 일본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국가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유학생활을 했던 것을 보면 그의 가정환경이 경제적으로 매우 여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광복 직후 1947년 서울대학교 예과를 수료하는데, 이 무렵 폐결핵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1948년《연합신문》에 시 ‘잔상(殘像)’을, 《서울대시보》에 ‘성숙(星宿)’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한다.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마산 성지여고 교사로 부임한다. 1953년 첫 시집「목숨」, 1955년 두 번째 시집 「나아드의 향유(香油)」를 출간, 같은 해 조각가 김세중과 결혼한다. 1955년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로 부임 후 1964년 교수가 되었다.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출간된 시집으로는 「목숨」(1953), 「정념의 기(旗)」(1960), 「풍림(楓林)의 음악」(1963), 「겨울바다」(1967), 「설일(雪日)」(1971), 「사랑초서」(1973), 「바람세례」(1988) 등 14권이 있고, 1권의 콩트집과 10권의 수필집도 발표한다. 몇몇 시집이 미국과 스페인, 독일, 일본 등에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2. 작가의 경향과 변모과정
1950, 60년대는 아직 전운이 가시지 않았고 정치적으로도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이 시기 문학은 역사와 사회에 대한 주지적 인식의 바탕에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사실주의 경향의 문학과 전통·순수 서정주의 문학, 독특한 문학적 기교를 추구하는 모더니즘 문학이 동시에 전개되었다. 김남조는 그 중에서도 순수 서정의 경향을 보인 시인이었다.
5, 60년대의 격동기에서 인간 존재의 허무함을 확인하면서 그는 절대적 존재인 신에게 귀의하여 시적인 구원을 시도하는 시인이 된다. 그의 시는 신의 은총을 입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 감격을 나타내는 신앙시의 경향이 강하다. 이를 바탕으로 ‘생명-사랑-구원’의 변모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그의 수필 김남조, 「세 갈래로 쓰는 나의 자전적 에세이」(시와 시학, 1997, 가을)
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6·25사변의 가장 큰 특징은 이별과 죽음이 풍족한 배급처럼 골고루 나눠지는 일이었다. 내 주변의 많은 젊은 이들이 이 일을 겪었고 내게 있어서도 하나뿐이던 동생이 죽고 그 천문학 교수는 납북되었다. 그 해 엄청난 장 마와 유별난 땡볕은 그 자체만으로도 비극의 한 몫을 연기하는 것과 같았다. 첫 시집 「목숨」의 작품들은 허 무한 탄피처럼 내 손에 남겨졌고 그 후 책으로 엮었으나 그에게 보여주진 못하였다.
그의 초기시는 전쟁과 죽음과 이별 속에서 인식한 끈질긴 생명의식을 노래한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김남조는 개인적으로도 많은 아픔을 겪었다. 학창시절 흠모했던 체육교사의 죽음과 천문학 교수의 월북, 형제와 아버지의 죽음, 동기들의 전쟁참여 등 견디기 힘든 아픔과 죽음, 이별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전쟁과 죽음과 이별 등 처절한 현실에서 그가 인식한 가장 극명한, 원초적인 주제는 목숨, 생명이었다.
여러 면에서 견딜 만하게 되었으니 내가 가장 좋은 이름으로 부르는 풍요의 사십대가 그것이다. 내면성 의 확대, 뭔가 넉넉한 안도, 감미롭게 포용하며 다가오는 다양한 감동, 햇빛이 비치는 인간성의 광장에 비로소 나도 나오게 된 행복감 등이었다. 내 나름의 좋은 시도 이 시절에 쓰여졌다. (중략)
생각해보면 전쟁과 빈곤, 충격과 비탄 등에 젊음은 송두리째 파묻혀 버렸고 중년기에야 수증기처럼 서려 오르는 감응으로 긍정적인 가치관과 경건한 신뢰 등을 만나게 되었음은 고마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