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번쩍 서해 번쩍 내상상 속의 홍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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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내상상 속의 홍길동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동해번쩍, 서해번쩍,
내 상상속의 홍길동..”
전국에 있는 공공기관들의 문서에 보면 대부분 이름을 쓰는 란이 있습니다. 이 란에 단골 샘플이름으로 기재되있는 “홍 길 동”.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자주 접했으며 이렇게 따졌을 경우, 알게 모르게 홍길동과 수많은 인연을 맺어가면서 자라온 꼴이 됩니다. (^^)
어렸을 적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동사무소에 갔었던 얘기를 아버지께서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무슨 연유였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으나, 아버지께서 하얀 종이에 무엇인가를 기록을 하고 계시던 도중, 옆에서 그걸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제가 “아빠, 여기 홍길동이다 홍길동!” 이러면서 동사무소 안에서 큰소리로 난리법석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래도 기특하다고 어린 저의 손을 이끄시며 서점으로 들어가 동화책 홍길동전을 사주셨습니다. 똘망똘망한 눈망울, 큼지막한 소리로 또박또박 책을 읽는 제가 기특하시다며 머리도 쓰다듬어 주시고 예뻐해주신 기억은 납니다.
지금의 저는 @@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재학중입니다. 부끄럽지만 ‘예비교사’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어교사로서의 자질 중 제가 제일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면은 (여럿 있지만) 얼마 되지 않은 독서량입니다. 초중고등학교때는 오로지 대학입시 제도아래 길들여져 왔던 터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대학 와서 책을 많이 못 읽은 것은 변명을 할 여지가 없습니다. 여기서 저를 절망적인 곤경으로 빠뜨렸던 일화를 하나 소개해보고저 합니다. 1학년 2학기 때 들었던 전공과목 국문학 개설. 이 과목을 정상적으로 이수하기 위해서는 교수님께서 내주시는 독서과제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가차없이 F학점을 주신다고 엄포까지 하셨습니다. 교수님이 제시해주신 독서과제 목록중에 홍길동전도 포함이 되있었습니다. 그러나 홍길동전을 비롯하여 금오신화, 구운몽, 기재기이 등등 여러 작품들이 많기에, 그리고 창피하지만 시험일을 얼마 안남기고 벼락치기식 독서를 하였습니다. 벼락치기로 읽다보니 책의 내용히 머릿속에 들어올리 만무하고, 구운몽 등 다 읽지 못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홍길동전은 ‘그냥 내가 알고 있는 상식 선에서 나오겠지...’ 라는 자만심을 가지고 읽어보지도 않고 독서시험에 응하였습니다. 거의 모든 동기들이 독서과제에 통과하였지만, 극소수의 불합격자들중 저도 포함되어 있었고, 교수님께서 홍길동전 미통과 이유를 밝혀주시는데 그 때 그 창피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더더욱 놀랍고 창피한 사실을 하나 더 말하자면, 이 독서과제 “재시험” 때문에 읽어본 홍길동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읽어보는 “완전판” 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보았던 동화책, 그리고 초.중학교때 많이 보았던 “만화 홍길동전.” 또, Tv 프로그램에서 다뤘던 “홍길동”.. 이정도가 제가 대학 들어오기 전에 알고있던 홍길동전의 실체(?)입니다. 독서과제의 재시험으로 정독하게 된 홍길동전.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제 자신에게 수없는 꾸짖음을 하며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였습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다시 읽고 또 읽어보았습니다.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들을 읽을때면, 더군다나 중.고등학교의 교과과정 안에 포함되어서 한번쯤은 다뤄 본 작품이라면, 작품의 주제나 특성 등 이런 것에 얽매이게 될 수밖에 없나봅니다. 읽는 내내 ‘아, 맞아. 이 제재는 적서와 서자의 차별제도 였지.. 그러니깐 이런 내용이 나오지..’ 라고 단정을 지어버리면서 읽게 되는 바람에 폭넓은 독서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단지 그 제재나 주제에만 얽매여 읽고 그 이상으로의 해석이 가능한가 의구심을 품기도 하였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러던 찰나에 에세이 숙제를 받게 되었고 이 홍길동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
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남성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친 적이 있을 겁니다. 일대다로 싸워서 승리를 한다거나, 도술을 부려 상대방을 놀라게 한다든가 하는 상상말입니다. 홍길동전에서도 역시 도술을 부려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는 장면 등 흔히들 말하는 “비현실적인 내용” 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홍길동전을 지을 당시의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가 비현실적인 상상을 하는 것과 같거나 비슷한 형식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나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남성들의 어떤 영웅의식, 영웅호걸이 되고자 하는 기상 등이 흐르고 있나봅니다.(^^)
교과서적인 해석으로 홍길동을 평가하자면, 사회적인 제약 속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한 영웅적 인물 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지만, 전 이런 생각을 또 한 번 해봅니다. ‘길동이 과연 모두를 위한 영웅이였나?’ 라고 말입니다. 길동은 가출을 한 이유가 적서차별과 출세주의 때문이였습니다. 즉, 적서차별에 대한 도전과 동시에 출세를 하기 위하여 집을 나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적서차별은 사회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즉, 그 시대의 백성 모두가 겪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위하여 길동이 나선것이기에 ‘영웅적 면모를 보여줬다’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두 번째 이유 즉, 출세주의를 위하여 집을 나갔다고 본다면 이는 한번쯤 의심을 해 볼만 합니다. 개인의 욕심, 개인의 욕망을 위하여 집을 나갔고 또한 그것을 위해서 활동한 길동을 무조건 “영웅적 인물” 이라고 해석하기엔 조금의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이것을 나쁘게 보는 것이 아니라, 너무 교과서적으로 평범하게 평준화 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점을 지적해보았습니다.
홍길동이 “영웅의 기상을 지니고 태어난 인물” 이라는 교과서적 시각에 또 하나 이의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홍길동 자신이 첩을 둔 것입니다. 분명 홍길동은 적서차별의 아픔과 고통을 견디다 못하고 집을 나갔습니다. 자기 자신이 사회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인걸 알면서도, 그 고통이 어느정도인지 알면서도 자신의 첩을 두었습니다. 이는 홍길동이 자기 모순에 빠져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길동의 첩이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길동이 어렸을 때 겪었던, 같은 고민에 빠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이 제도는 계속 세습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살펴 보았을 때, 길동이 “영웅”이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교과서적인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과서에 맞춰 작품을 공부하다 보면 소설의 내용을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주제를 찾고 문체상의 특징을 찾는 등의 교과서적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야 “시험을 위해서” 라는 핑계로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암기 시험이 아니고 사고력을 요하는 대학 수업에서마저도 교과서적으로 바라보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그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잘못되어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상황을 인식을 했을 경우, 이것이 인식에서 그치느냐 아니면 실천으로 옮겨 바꾸고자 하느냐로 상황이 추려집니다. 홍길동은 자신이 처한 문제인 적서차별로 인해 받는 고통을 인식에서 그치지 않고 개혁하려고 실천으로 옮기는 인물입니다. 어린 나이에 진보적인 사고를 지니고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청년, 홍길동이 개인적으로 참 멋져보입니다. 그리고 교사라는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를 참 많이 돌아보게 합니다. 제가 사범대에 온 이유가 학생들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학교 안에서 즐겁게 생활하고 싶어서.. 라고 말해도 틀린 것은 아니나, 솔직히 말하면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안정된 직장. 변화하는 사회에 안주하고자 하는, 어떻게 보면 안일하고 보수적인 심리상태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도화된, 고정관념화 된 것들에 불편함을 느끼면 “바꿔보자” 하는 마음보단 “에이, 뭐 어때. 불편함 조금 감수하고 말지 뭐.” 라고 안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제가 현실에 안주하고자 한다는 성향이 있는 것을 인식하였으나, 이것을 인식에만 그치느냐, 아니면 바꾸고자 하는 노력을 보이느냐. 이는 제 심사에 달린 것 같군요. 바꾸고자 하는 노력을 보이고 싶습니다.
고전 영웅 소설의 대부분을 보게 되면 “사랑” 얘기가 빠지는 경우가 드문데, 이 홍길동전에서는 남녀관계를 자세히 다루지 않아, 제가 보기에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아직은 젊다고 할 수 있는 스무살이며 사랑연애라는 주제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홍길동전을 읽으면서는 사랑이라는 관심사가 쏙 빠지는 바람에 욕구 기대치의 하락이 가져다 주는 아쉬움이 꽤나 컸습니다. 방학 때 제가 계획을 세워논 것 중에 하나가, 어떠한 작품을 새롭게 각색해서 저만의 글로 재해석하여 자료로 남기는 것입니다. 홍길동전에 이 사랑이라는 주제를 첨가시켜 맛깔스러운 글로 재탄생 시켜보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 익숙한 이름, 홍길동 (^^). 완전판을 대학교에 와서, 그것도 독서과제시험에 낙제하여 재시험이라는 창피한 명목으로 읽어보았습니다. 만화나 tv로 보던 것과는 차이가 있음을 확실히 깨달았고, 여러번 작품을 읽어봄으로써 홍길동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작품 내에서는 “영웅적 기상을 가진 인물이 풀어나가는 영웅소설” 이라고 하기엔 적잖은 문제점도 발견할 수 있었고, 작품 외에선 홍길동의 인물 됨됨이, 실천능력 등을 본받고 싶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에세이라는 것을 생전 처음 써보며 이 형식이 에세이의 형식에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최선을 다하여 썼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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