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국가의 실패는 정치사상사를 가로질러 날카로운 경계선을 긋고 있지만, 그 연속성은 단절되지 않고 있다. 도시국가 속 정치적 동물로서의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막을 내렸고 알렉산드로스와 함께 인간은 개개인으로 출발한다.
1. 개인과 인간성
사람들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바인, 단독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만 했으며 도시국가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몰개인적인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결합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워야만 했다. 이 과제의 어려움 속에서 종교양식은 꾸준히 성장했다. 종교는 점차 인간의 관심 속에서 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였고 종교기관 역시 더 큰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기독교의 출현과 그 교리 형성으로 극에 달하기도 했다. 이러한 종교적 성장이 정서적 변화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할 수 있겠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모든 철학은 윤리적 설교와 위안의 대리자가 되었다. 이 속에서 고전 시대 그리스인들이 결코 가진 적 없던 자의식과 자유 및 내면세계의 관념이 자라났다.
또한 새로운 형태의 결사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게 된 상황 속에서, 사회적 과계를 재해석하려는 정치적/윤리적 철학의 시도들이 존재했다. 개인적 자유와 고립의 느낌 그리고 정반대되는 하나의 인류, 인간종족의 일원이라는 자각이 그 바탕이었다. 특히 인간종족의 일원이라는 자각은, 인간을 집단과 집단으로 분리시키는 구분의식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리스인과 야만인 사이 구별이 희미해졌다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정치사상은 두 가지 이념을 분명히 하고 공통된 하나의 가치체계로 엮는 것이 문제가 되었는데, 하나는 개인적/사적 생활과 관계있는 인간성에 관한 개인에 관한 이념이고, 다른 하나는 공통된 인간 본성이 부여하는 범세계적 규모의 인간성 즉 보편성의 이념이다. 따라서 개개 인간은 개인이 존경할 어떤 가치를 가졌다는 전제에 입각하여 윤리적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전제가 더한 세계와 만나면서, 도시국가에서의 결과와 다른 것을 가져왔는데 그것은 개인이 자신의 쪼갤 수 없는 내면생활을 주장할 수 있게 됨이며 자신의 개인적 인격을 존중할 어떤 고유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이것은 보편성의 이념에 윤리적 의미를 상응하게 첨가하여, 인간이 단순히 동류에서 인간 종족을 동포로 만드는 정신의 결합이 이루어졌다.
자율적 개개인이 존재하는 이러한 범세계적 사회의 개념이 형성된 것인데, 이는 헬레니즘 시대 철학자들이 도시국가에 국한해서 등장했던 이상들을 범세계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이러한 이념의 재조어 및 이상의 재응용은 그리스 철학의 생명력을 잘 입증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재응용된 개념은 유럽 인민의 도덕적 의식 속에 확고히 박히게 되었다.
2. 화합과 군주제
이러한 재해석과 재응용의 과업은 스토아 학파의 철학과 대체적으로 일치하는 방향으로 오랫동안 그 흐름을 계속하였다. 스토아 학파는 아테네의 4대 학파 중 마지막 학파로 제논에 의해 창설되었다. 특징은, 스토아주의가 그 출발부터가 헬레니즘적 학파였지 그리스와 밀접환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스토아주의는 키닉주의의 한 분파였다. 제논은 자신의 이상국가 속에서 구분 없이 단일한 ‘민중’으로 살 것이라고 말했다. 스토아 학파는 화합이라는 새로운 이념을 채택했다. 그리스인들과 야만인들 간의 구별을 포기한 것이 그 소득이었지만, 현인과 어리석은 자들을 그와 맞먹을 정도로 구별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화합의 이념은 왕권에 관한 헬레니즘적 이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고전적 시대에 관심거리가 아니었던 군주정이 정치이론가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시대상황의 자연적 추세였다. 알렉산드로스오의 제국 및 그 분열된 왕조들은 고대세계의 대부분을 왕들에게 복종하게 했고, 실제로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들조차 그들의 영향력과 지배에 복종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과는, 그리스인들과 동방인들을 결합시킬 수 있는 어떤 다른 정부형태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었다. 왜냐하면 국가를 하나로 묶을 그 어떤 다른 강제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동시에 헬레니즘적 전제주의는, 정부가 군사적 전제주의 이상의 그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그리스적 감각을 전적으로 상실한 적이 없었다. 즉 왕의 신성에 관한 것인데, 왕은 공공의 제식 속에서 숭배되었다. ‘왕을 에워싸는 신성’의 신념은 유럽인들의 사상 속으로 흘러들어와 이런 저런 형태로 근대에까지 잔존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제식과 명예는 도시국가와의 동맹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권위를 제공했다. 즉 왕의 공공적 제식은 국가에 통일성과 동질성을 부여하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사후에까지 계속성을 부여했다.
결과적으로 헬레니즘 시대에 신격화한 왕의 이론이 성장한 것이며, 진실된 왕은 자신의 왕국에 조화를 가져온다는 측면에서 신성하였다. 왕은 인격적 화신이었다. 따라서 왕의 권위는 도덕적/종교적으로 승인을 받았으며 그의 신민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자유 및 존엄을 상실하지 않고 권위를 승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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