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1. 생애
고지식하고 몰취미하며 평범하고 단순한 은행가인 하인리히 프로리스 쇼펜하우어를 아버지로 하고, 예술가적 재치와 다채롭고 호사한 서역의 여류문인 요한나를 어머니로 하여 단치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를 상인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21세에 괴팅겐 대학에 입학하여 자연과학과 역사를 배우면서 슐쩨로부터 철학지도를 받고 그의 권과에 따라 플라톤과 칸트를 공부하였다. 1811년에는 베를린 대학으로 가서 피히테의 강의를 청강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주로 독학했다. 1813년에는 논문 에 의해 예나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11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바이마르에서 어머니와 같이 살았지만 나중에 생이별했다. 그와 교분이 두텁던 괴테를 알게 되고 그의 유명한 에도 찬의를 표하면서 그를 중심으로 한 문인들과도 사귀어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동양학자 마이어의 권고로 인도철학, 특히 우파니샤드를 연구했다. 그는 1814~18년 사이에 드레스덴에 머물면서 와 필생의 대작인 을 완성했다. 그는 이탈리아 만유를 마치고 돌아와 1820년 베를린대학 강사로 취임했으나, 당시 마치 제왕처럼 군림하여 동대학은 물론이고 전 학계를 주름잡던 헤겔에게 눌려 강의가 여의치 못하게 되자 못마땅하여 다음해에 그만두었다. 은 이때 대학에서 제출한 이력서이다. 1822년부터 25년까지 다시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1825년에서 31년까지 베를린에 살면서 자기 철학이 득세하기를 은근히 기다렸지만 헤겔 철학의 유행으로 허사가 되어 더욱 염세적으로 흐르다가 1831년 콜레라의 창궐로 베를린을 피하여 프랑크푸르트 임마인으로 옮겨가서 이곳에서 30여 년간 민간의 독신철학자로서 가족도 친구도 없이 쓸쓸한 하숙방에서 한 마리 개와 더불어 틈틈이 피리를 불면서 고독을 달랬다.
생전에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한 그의 사상 때문에 시종 우울한 생활을 보냈지만 1851년 만년에 가서 그의 주저를 통속적으로 해설한 작은 논문집 이라는 기발한 처세철학서를 내놓음으로써 비로소 각광을 받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전 사상체계가 재검토되기 시작했다. 그의 생애는 1860년 9월 21일 폐수종으로 사망할 때까지 약 10년간 빛을 보인 것 이다.
2. 사상
그의 철학은 칸트의 , 플라톤의 , 베다의 및 염세관과의 결합이다. 그에 의하면 인식되는 모든 것, 즉 세계는 단지 주관에 대한 객관이며, 따라서 이며 현상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시간, 공간, 인과율 등에 의해 기술되는 과학의 대상이다. 여기까지는 칸트의 주장과 별로 다를 바가 없지만 쇼펜하우어는 칸트가 인식의 대상일 수 없다고 한 물자체를 의지 속에서 발견했다. 다시 말해서 세계의 가장 내적인 본질, 모든 현상의 유일한 핵심은 의지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지는 심리학적인 것이 아니라 맹목정인 요, 힘이요, 끊임없는 노력이다. 우리는 의지를 인식할 수 없으나 의지야말로 모든 생명체에 직접 확실한 사실이며, 우리 자신 속에 직접 직관할 수 있다. 이 의지의 객체화는 무기적인 자연의 식물계, 동물계, 그리고 인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의지 객체화의 여러 단계의 어디에 속한다. 가령 이, 목청, 장은 객체화된 굼ㄹ주림이며, 생식기는 객체화된 성욕이다.
이와 같이 세계는 하나의 의지 표현이지만 의지는 현상이 되기 전 시간, 공간, 인과율에서 독립된 일정 상태를 취하고 나타난다. 쇼펜하우어는 플라톤을 본받아 이것을 이념(이데아)이라고 불렀다. 이념은 의지가 객체화하여 현상, 즉 표상이 되기 위한 단계다. 즉 이념은 의지가 객체화되는 형식이다. 의지는 직접 현상이 될 수 없고, 우선 이념이 되고 나서 그 후에 개개의 현상이 되므로 쇼펜하우어는 이념을 직접적 객체, 개물을 간접적 객체화라고 불렀다. 무기계에서는 힘, 유기계에서는 동식물의 종류, 인류에게는 개성이다. 의지는 의지 자체와 마찬가지로 영원히 불멸하며, 개체만이 끊임없이 생멸한다.
의지는 맹목적인 힘으로서 언제나 결핍되고 끊임없이 저지당하므로 모든 삶은 고뇌로 가득 차 있다. 고뇌에는 끝이 없다. 결핍, 곤궁, 삶을 유지하기 위한 걱정이 첫째 고뇌다. 그리고 설사 이것들이 극복되더라도 뒤를 이어서 성욕, 질투, 증오, 탐욕, 병 등등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모든 재화는 의지의 내적 항쟁에서 비롯된다. 뭇 사람의 삶 자체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시계추처럼 내왕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통은 적극적이고 쾌락은 고통이 없는 상태, 소극적인 것이며, 곧 권태로 옮겨간다. 그러므로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없다. 욕망이 무한한 데 비하여 만족은 극히 보잘것없는 것이다. 하나의 만족에 도달하면 곧 새로운 욕망이 고개를 든다. 게다가 세계 자체가 불만과 고통에 시달리는 의지의 표현이므로 평화나 안정은 순간적인 환영에 불과하다.
우리가 고뇌와 투쟁의 세계에서 벗어날 방법은 첫째, 예술에 의한 구제이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참된 철학과 예술은 플라톤의 이념(이데아)을 천재적으로 직관하는 것이다. 이 이데아의 직관이야말로 건축, 조형미술, 문학 등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런 예술은 의지에 시달리지 않는 직관에로 높여 준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일시적인 해탈이다. 왜냐하면 지성은 자기 자신을 낳은 의지에 제약되어 있으므로 의지에 의해 다시 그 안개 속에 이끌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은 그렇지 않다. 음악은 의지 자체의 말이다. 음악은 이념의 모사가 아니다. 따라서 음악은 다른 예술과 같이 환영에 대해서가 아니라 본질에 대해 말한다.
구체의 둘째 단계는 의지의 부정이다. 그러나 여기에 이르면 도덕을 거쳐 종교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세계의 모든 재해와 허망함을 생각하여, 일체의 개체는 같은 의지의 표시임을 깨달을 때 동정이 생긴다. 이것이 도덕의 기초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고뇌에 동정하는 사람은 벌써 살기를 원치 않게 되며, 살려는 의지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금욕과 고행은 의지를 극복하는 수단이며, 그 목적은 의지의 완전한 소멸을 체득한 성자들이 말하는 ‘신의 품속에서의 자기몰입’ 즉 무에 도달 하는 것이다.
3.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1819년 라이프치히에서 간행. 쇼펜하우어가 이 저서에서 주장하는 바로는 우리를 에워싸는 시간과 공간을 그 형식으로 하는 이 세계는 진정한 실재가 아니라 단순한 주관적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 세계의 배후에서 세계를 성립시키는 실재는 ‘살려고 하는 맹목적 의지’이다. 이 고통으로 가득 찬 생의 세계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첫째 모든 욕망을 떠난 예술적 관상을 통해서이다. 더욱 철저한 방법으로는 금욕적인 ‘의지부정’에 의해 개개의 자아를 향한 속박을 떠남으로서 우주의 원리에 합치한다는 인도 현자의 생활태도라는 것이다.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토론의 법칙)
☆쇼펜하우어 참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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