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고대의 역사인식 연구의 어려움: 자료의 부족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서들은 존재했었다고 알려지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없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 고려 인종 23년(1145) 김부식에 의해서 편찬된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대 역사편찬서 소실의 경위
한국 고대의 서적들이 없어지게 된 경위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은 자신 나름대로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이덕무 :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이세적이 우리나라의 서적들이 중국보다 뒤지지 않는 것에 대한 시기심으로 고구려의 모든 책을 평양에 모아 불살라버렸다. 또한, 936년 견훤은 자기가 세운 후백제가 고려에 망하자 스스로 수집한 삼국의 유서들을 전주에서 불태워버렸다.
*박은식 : 이세적의 행동에 대해서 이덕무와 같은 입장을 표명함
*이기동 : 고려시대 이전의 역사서들이 668년과 936년의 두 차례의 환난으로 인해 모두 없어졌다고는 볼 수 없다. 고대 역사서 중에 어떤 것들은 『삼국사기』가 편찬되던 당시까지 남아서 편찬에 참고가 된 것도 있으며 『삼국사기』에 주기로 인용되어 있는 그 몇몇 책들이 이를 뒷받침하는 분명한 증거이다. 또한, 『삼국사기』가 고려 초에 편찬된 이른바 『구삼국사(舊三國史)』를 뜯어고친 것이며, 나아가 이 『구삼국사』역시 그 전부터 있어온 이른바 고기들을 토대로 하여 편찬된 것이라면 『삼국사기』에 특별한 주기가 없는 경우에도 그 전반적인 기사내용은 기본적으로 고려 이전의 여러 기록에서 취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 점은 『삼국사기』보다 대략 140여 년 뒤에 일연에 의해서 저작된 『삼국유사』에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일본서기(日本書紀)』에도 세 가지 종류의 백제 역사책이 풍부하게 주기로 인용되고 있는데, 이들 역사책의 편찬경위와 사료적인 신빙성 문제를 둘러싸고 역사학계에서는 끊임없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연구의 전제
책이름이나 단편적인 기사만 조금 남아 있을 뿐, 그 역사책 자체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형편에서 고대의 역사인식을 살펴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사가 기본적으로 고대의 여러 역사책 내용을 거의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는 전제 아래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에 역사책이 편찬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아울러 고려하여 이들 역사책의 성격 내지 역사인식을 추측해 보겠다.
2. 삼국시대의 역사인식과 역사편찬
삼국시대 이전에 역사책이 편찬되었는지에 대한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따라서 이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은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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