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권리 A Right to Know(1)
뉴스 문화는 민주주의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지어 발전해 왔다. 민주주의가 에이브라함 링컨의 말대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 라면, 가장 좋은 상태의 저널리즘도 다원적 성향을 보인다. 저널리즘과 민주주의는 ‘저널리즘’ 과 이익을 위해 미디어가 가지는 상업적 명령 사이에서 장기간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21세기에서는 후자가 우선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정보가 민주주의 작동에 유용했다. 하지만 지난 세기 말 편집자들은 수익을 유지하거나 늘리기 위해 뉴스를 점점 더 비즈니스 상황 속에서 정의했다. ‘뉴스’ 는 상업화 되었다.
누구의 권리인가? 그리고 누가 아는가?
Guardian 이 제기한 다우니 닐 해밀턴의 ‘거금이 든 현금 봉투사건’을 증명하기 위해 두 프리랜서 기자인 조나단 보이드 헌트와 말콤 키스힐은 모든 이야기가 조작됐고 그 사건에는 어떤 현금도 없었고 팀 스키스, 닐 해밀턴, 그리고 이안 그리어는 혐의가 없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그 어떤 곳에서도 알릴 수 없었다. 결국 자신들이 조사 작업을 알리기 위해 웹사이트(www.guardianlies.com)를 개설했는데 세계적으로 이런 종류로는 처음이다. 인터넷이 지금은 사이버스토커, 음모가, 내부 고발자, 혹은 단지 미친 사람들의 그저 마지막 휴양처가 아닌 언론의 전시공간으로 존경받고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까? 인터넷이 미디어 조직에 있어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인터넷이 믿을 만한 것이 되려면, 합법적인 웹사이트와 아닌 것을 구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잘 알려진 미디어 조직의 웹사이트 문제가 아니라 신뢰와 진실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독립적인 사이트나 블로그가 희미하게나마 확대 되어야 한다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인터넷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기삿거리를 가진 기자를 위해, 또 말 할 곳이 없는 기자를 위해 요긴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주류 언론 매체가 다루지 않는 놀라운 ’폭로‘를 알렸을 때 사람들이 보여주는 자연적인 ’냉소‘를 극복해야 한다.
이런 기자들이 환영받게 된 이유는 바로 대중에겐 알 권리가 있다는 기자적 감각, 그리고 스토리는 대중의 관심에 있지, 대중을 위한 관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대중의 의견을 보고하고 해석하고 배경 지식을 제공하고 그리고 글로써 알린다. 기자들은 또 “만약 어떤 일이 다른 곳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지, 어떤 조건이 있으며, 다양한 행동의 허락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결과가 무엇이 있으며, 그들의 정치적인 리더들이 어떤 선택을 고려하고 있는가” 라는 방법으로 민주주의에 기여한다. 물론 그것은 기자들이 그런 정치적인 뉴스와 사설을 제공해야 할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는 운명 지어져 있지는 않다.
기자라는 단어는 17세기 말, 처음으로 언어에 편입됐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지지자로서의 저널리즘의 역사적인 역할은 저널리즘이 지난 300년 동안 이루려고 했던 연속을 기반으로 두고 있다. 그리고 3가지 전통적으로 연결된 책임감이 있다.
하나는 정치적 사건과 그들의 해석을 포함한 그날의 사건에 관한 알려진 시선의 다양성에 대한 프레젠테이션과 두 번째는 대중 관심의 감시자, 대중을 위하기 보다는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민주주의를 해치는 정치가와 임원들을 반대하는 ‘경호원’으로서의 역할 ‘제4부(forth estate)로서 언론의 개념; 마지막으로 거짓을 폭로할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임의적으로 휘둘러지는 곳에서도 진실을 지지할 수 있는 능력, 왜냐하면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기자들은 다른 사람의 통제로부터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정의하건데 대중매체는 언제나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중계한다. 덧붙이면, 지금까지 항상 대중의 생활이 세밀하게 전개되는 다양한 토론장에 기여하려고 노력하는 기자들과 미디어 종사자들은 Walter Lippmann이 “거짓말을 탐지하기 위한 정보가 없는 사회에 대해 자유는 없을 것이다“ 라고 말했듯이 항상 존재해 왔다. 하지만 규제 완화가 가속화되고, 상업주의가 점점 더 만연해진 19세기 말 이래로, 인간사에 관한 이야기에 의해 요약된 개인 “문제” 가 저널리즘에서 뚜렷한 증가를 보였다. 스포츠 영역이건, 비즈니스 영역이건, 혹은 오락영역 이건, 그런 이야기들은 사람들에게 공인의 책임에 반하는 그들만의 세계 생활들을 보여줬다.
잡지들은 매주 그리고 매월 단위로 유연한 마감일과 초기 교통 체계의 변화를 가능하게 한 더 넓은 뉴스 안건을 가지고 일을 했기 때문에 더 번창하기 쉬었다. 잡지들은 비슷하게도 이로운 우편요금과 빠른 배달로부터 이익을 보면서, 19세기 초기부터 나왔다. 방송미디어 출연은 대서양의 양쪽 대륙의 언론계와 정부와 관련된 신선함을 선사했다. 미국에서 1934년 통신법(Communication Act)은 방송사들이, 방송 임대를 허락받는 대가로 “대중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보장하는 연방커뮤니케이션위원회를 세웠다. 정부가 방송내용에 제제를 가했음에도 상당한 양의 기사가 전송되었다. 하지만 Ronald Reagan이 1980년대에 대통령이 되었을 때, 뉴스 보도는 이미 양적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어떤 법도 출판 보도의 자유를 막기 위해 통과 될 수 없고, 콘텐츠를 결정하는 미디어의 권리는 제한하는 것도 안 되고 어떤 간행물의 사전 억제령에도 묶여있지 않다. 19세기 초기의 영국에서의 4번째 계급으로서의 언론의 발전은 많은 점에서 자유와 공정성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민주국가가 나타나는 것을 반대하기 보다는 지지하는 쪽으로 명시하기 위한 시도였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