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일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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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구한말 일제시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구한말부터 일제시대까지의 우리 민족의 대응이 어떠했는지를 사건 위주로 다루는 것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즉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다는 부분적인 관점으로 다루어보고 생각해보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관점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큰 틀에서 시대별로 나누어 생각해보면 앞의 관점으로 보는 것과는 뭔가 다르고 더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지고 시대별로 주요 사건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860년대 :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선교사 박해를 구실로 강화도로 쳐들어온 프랑스군은 강화도 갑곶진을 점령하고 이어서 강화성을 점령. 그 곳에 있던 상당수의 문화재를 약탈했다. 이렇게 파죽지세로 나아가던 프랑스군은 정족산성에서 양헌수가 이끄는 군의 매복에 걸려 사망 6명, 부상 300명의 막대한 피해를 입고 물치도로 후퇴. 결국 조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1870년대 : 1871년 신미양요가 일어났다. 1866년 8월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 대한 응징과 조선관의 통상 관계 수립을 목적으로 1871년 아시아함대 사령관 로저스가 군함을 거느리고 조선으로 쳐들어 왔다. 강화도의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한 미군은 광성진에서 어재연이 이끄는 조선군과 치열한 접전끝에 광성진을 점령하지만 이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은 미군은 결국 조선에서 퇴각하게 된다.
이 두 사건은 조선이 서양 국가들과 최초로 대면한 사건이었다. 비록 전쟁을 통해서 였지만 국가 대 국가로 첫 대면을 한 사건이었고 이 전쟁에서 조선이 생각보다 강한 국가라는 인식을 갖게 된 당시 서양 국가들이 조선이 단지 중국의 속방이라는 인식을 기지고 있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선이 미국과 맺은 조.미 수호통상조약에서도 “조선은 청국의 속방이다.”를 조약에 넣을 것을 주장하는 청국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은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1890년대 :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견디지 못한 전봉준을 위시한 고부민들의 봉기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은 당시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안핵사 이용태의 횡퍼에 다시 봉기하게 된다. 이 결과 전주성이 함락되자 조정은 토포사 홍계훈을 파견해 동학군과 전주 화약을 맺는다. 이렇게 조용해 질 것 같았던 동학농민운동은 일본이 대궐을 점령해 조정을 위협하고 청ㆍ일 전쟁에서 승리.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해 나가자 다시 봉기하게 된다. 그러나 막강한 일본군의 화력 앞에 동학군은 우금치 전투의 패배를 계기로 급격히 허물어져 결국 지도부들이 체포되면서 실패하게 된다.
동학농민운동의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국제적으로는 동학농민운동의 진압을 이해 청국에 원병을 요청한 것을 계기로 청ㆍ일 전쟁이 일어났고 이 전쟁을 일본이 승리함으로서 1200년 이상 이어진 조선과 중국의 관계가 끝나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적으로는 외세에 맞서 민중들이 일어섰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여준 계기라 할 수 있고 이후 조선 사회가 갑오개혁, 을미개혁, 독립협회로 이어지는 급격한 변화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1900년대 : 항일 의병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이후 전국 각지에서 이 늑약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 중심에 의병이 있었다. 이들은 을사늑약 무효와 친일 내각 처단을 내걸고 항쟁을 계속했다. 그러다 1907년 군대 강제 해산으로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면서 의병 운동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된다.그 이후 의병 운동은 전쟁의 성격으로 바뀌게 된다. 그 이후 의병 운동은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하고 각지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게 되나 일본군의 남한 대토벌 작전 이후 급속하게 그 힘을 잃게 된다.
이 시기에 주목해야 할 점은 일제가 조선의 역사에 전면으로 나섰다는 점이다. 청ㆍ일 전쟁, 러ㆍ일 전쟁에서 잇따라 승리한 일본은 이후 제 1차 한ㆍ일 협약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해 나갔다는 점이다. 그래서 1900년대 의병 전쟁 시기를 비록 조선이라는 국호가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일제에 대한 독립투쟁이 시작된 시기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라 생각된다.
1920년대 : 1920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독립군이 대승을 거두었다. 1920년 6월 일본군 1개 대대가 봉오동으로 독립군을 추격해 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대한 독립군은 3면으로 매복해 일본군을 기다리고 있다가 일본군이 봉오동 골짜기 안으로 들어오자 일제히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일본군 전사자 157명. 독립군 전사자 4명.
1920년 8월 훈춘의 일본 영사관을 습격. 일본군의 이동 정보를 알아낸 독립군은 청산리 백운평 골짜기에서 우진ㆍ좌진ㆍ중우진ㆍ중좌진으로 진을 펴고 일본군을 기다렸다. 이에 일본군이 청산리에 나타나자 일제히 공격을 개시. 적 2200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