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공 민영환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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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충정공 민영환 선생 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충정공 민영환 선생묘
먼저 충정공민영환 선생에대해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여흥민씨 이시고, 민겸호의 아들, 백수 여성부원군 태호에게 입양되었습니다.
영국 여왕 빅토리아의 즉위 60주년 축하식에도 참석하였다. 잦은 해외여행으로 새 문물에 일찍 눈을 떠, 개화사상을 실천하고자 유럽제도를 모방하여 정치제도를 개혁하고, 민권신장(民權伸張)을 꾀할 것을 상주하였습니다. 군제(軍制)의 개편만이 채택되어 원수부(元帥府)를 설치, 육군을 통할하게 하였습니다. 친일적인 대신들과 대립, 일본의 내정간섭을 성토하다가 시종무관장(侍從武官長)의 한직(閑職)으로 밀려났습니다. 민영환은 자결당시 황제에게 올리는 글 , 재경 외국사절들에게 일본의 침략을 바로보고 한국을 구해줄 것을 바라는 내용, 백성들에게 각성을 요하는글 3통의 유서를 작성하엿는데 각국공사와 황제에게 전하는 유서는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변천]
민영환은 순국 후 선향인 용인에서 장례를 지낸 뒤, 일제강점기 내내 용인군 수지면 풍덕천리 토월마을에 봉분 없이 평장되어 있었다. 해방이 된 후 이승만 대통령의 명으로 길가에 방치되었던 민영환의 묘는 지금의 위치로 이장되었다. 그때가 1959년이다.
[형태]
민영환 선생의 묘역은 200여 평에 이르고, 묘 입구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원형으로 된 봉분은 높이가 2m, 지름이 6.5m이다. 봉분 앞에는 상석을 비롯하여 문관석 2기, 망주석 2기, 장명등 1좌가 있다. 봉분 뒤쪽으로 60m 정도의 곡담이 둘러처져 있고, 묘소 아래쪽에는 계단석이 설치되어 있다
[금석문]
묘비에는 “계정 민충정공 영환지묘(桂庭閔忠正公泳煥之墓)”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 글씨는 우남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다. 신도비의 전액은 서예가 김기승(金基昇)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강사로 있을 때 쓴 것으로 “대한민국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의정대신 충정공민영환 신도비명(大韓民國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議政大臣 忠正公閔泳煥 神道碑銘)”이라고 제액(題額)되어 있다.
신도비의 왼쪽 측면에는 세 통의 유서 중 국민에게 보냈던 유서의 언문이 적혀 있고, 한글 해석문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기행)
우리는 버스를 타구 갈아타구 민영환선생묘 근처에 도착할수 있었다.
우리는 국사책에서 민영환선생이 자결햇다는 사실 하나로 답사장소를 민영환성생묘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