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원인의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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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전쟁 원인의 재해석
저자는 서론에서 모겐소의 견해를 빌려오고 있다. 모겐소는 어떤 이론을 평가하는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기준은 이론이 역사적 사실에 의해 경험적으로 검증되는가 이고, 두 번째 기준은 이론이 논리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 동안 한국전쟁의 원인에 관한 설명들이 많이 있었다. 이러한 설명들은 북한의 독자성을 기준으로 하여서 이념적 스펙트럼 상에 위치시킬 수 있다. 가장 좌측에 속하는 견해는 북한이 독자적으로 남침을 결정했다고 설명하는 이론이고, 가장 우측에 속하는 견해는 북한의 독자성을 무시하고 소련의 세계전략이라는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러한 양극단의 주장과는 다른 이론들이 그 사이에 등장한다. 그 중에 하나는 북한의 독자성을 강조하면서도 스탈린의 역할을 원조와 동의에 국한시켜서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인데 좌측극단 에서 약간 우측에 위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스탈린의 세계전략을 중시하면서도 한반도 내부의 문제를 이용했다는 이론을 들 수 있다. 이 이론은 우측극단에서 약간 좌측에 위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한국전쟁 원인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이론들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면서 저자는 커밍스의 내전론이 한국전쟁 원인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 논문의 목적을 두 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는 커밍스의 내전론을 모겐소가 설명한 두 가지 기준들을 적용하여 어느 정도 타당하고 설명력이 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두 번째는 내전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하여 대안적 가설들을 제시하고 이를 검증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는 스탈린의 세계전략적 목적에서 한국전쟁의 원인을 찾는 기존의 이론들의 한계점을 극복하고 그 원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롤백이론을 제시한다.
롤백이론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미국이 유엔의 깃발 하에 미국의 봉쇄선이었던 38선을 북진하여 북한을 소련의 영향권으로부터 제거하려는 시도를 설명하기 위하여 발전된 개념이다. 저자는 논문에서 이러한 롤백이론을 역으로 스탈린에게 적용하여 한국전쟁의 원인을 설명하고자 한다. 저자가 롤백이론을 스탈린에게 적용하여 주장하고자 하는 가설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스탈린이 냉전 개시 이후 최초로 북한군을 이용하여 미국의 봉쇄선을 대담하게 넘어서 남한을 북한에 흡수시켜 전한반도를 소련의 영향권 하로 편입시켜 미국과의 냉전 대결에서 소련의 세계전략적 목적들을 관철하려는 과정에서 한국전쟁이 발생하였다. 둘째, 롤백이론은 스탈린이 미국과 직접적으로 전쟁을 벌이지 않고 한반도라는 제한적인 지역에서의 제한전을 통해서 소련의 세계전략적 목적들을 달성하고자 했다. 셋째, 롤백전략을 통해서 스탈린은 일본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여 일본의 대미일변도정책을 좌절시키고, 미국의 위신을 실추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미국이 만주로 침략할 경우 스탈린은 중소 방위조약을 이용해 미국을 약화시키고 냉전대결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고자 시도하였다.
저자는 롤백이론을 검증하기에 앞서 커밍스의 내전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커밍스의 내전론은 해방 이후에 있었던 한반도의 내부적인 상황이 한국전쟁의 원인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커밍스는 식민지 시대의 부정적인 유산이 한국전쟁에 끼친 영향을 강조한다. 이때 커밍스가 제시하는 부정적인 유산은 토지문제이다. 커밍스에 따르면 해방이후 북한은 성공적으로 농지개혁을 완수했으나, 남한은 성공적으로 농지개혁을 완수하지 못했고 이에 따른 사회적인 모순이 한국전쟁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커밍스의 논조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내전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이러한 사회적 모순과 더불어 커밍스는 대내적 사건들의 연장에서 한국전쟁의 원인을 찾고 “제2의 모자이크”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제2의 모자이크” 가설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38선 부근에서 계속되던 국경분쟁이 1950년 6월25일 새벽에는 확전되어서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한국전쟁은 국경분쟁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커밍스가 제시한 이러한 한국전쟁의 두 가지 원인을 통해 여러 가지 가설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첫 번째는 한국전쟁은 내부적인 모순에 의해 일어났다. 그 내부적 모순은 농지개혁과 관련된 문제이다. 따라서 남한에서는 한국전쟁 이전에 농지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두 번째는 한국전쟁은 국경분쟁의 연장이다. 그러므로 소련은 북한의 남침의도를 모르고 있었다. 소련이 북한의 남침의도를 몰랐으므로 대규모의 무기지원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커밍스의 가설들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적으로 남한에서의 농지개혁이 한국전쟁 전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가설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연구들에 의해서 부정되고 있다. 다음으로 소련이 북한의 남침의도를 모르고 있었고 따라서 대규모의 무기지원은 불가능하다는 가설은 경험적으로 오류임이 입증되었다. 최근에 공개된 소련문서는 한국전쟁 직전에 북한이 최신제 무기와 장비를 구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커밍스의 이론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국경분쟁의 연장선에서 한국전쟁의 원인을 파악한 것이다. 그런데 1949년 10월 후반쯤에는 소련이 38선에서 북한이 국경분쟁을 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전쟁은 국경분쟁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현재에 공개된 문서는 스탈린의 지시와 동의 없이는 북한이 남측에 대한 어떠한 도발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스탈린의 지시에 의해서 한국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아무런 주체성도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북한 내부의 개전의지가 존재했고 스탈린은 그 개전의지를 이용해서 자신의 세계전략적 목적들을 달성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스탈린이 한국전쟁을 통해서 어떠한 세계전략적 목적들을 달성하고자 했는지 살펴보자. 스탈린의 목적을 살펴보기에 앞서 북한의 남침에 관한 스탈린의 입장변화를 살펴 볼 있다.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남침의사를 정식으로 표명한 것은 1949년 3월 5일 모스크바 회담에서 이다. 이때 스탈린은 반격만을 허락했고 남침은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이러한 스탈린의 입장은 1950년 1월30일에 김일성의 남침을 허락하면서 변하게 되었다. 스탈린의 이러한 입장변화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스탈린이 아시아에서 얄타협정을 폐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1950년 1월 22일 회담에서 스탈린은 모택동에게 공산중국과 새로운 동맹조약 체결을 통보했다. 이때 스탈린의 결정에 대해 모택동은 그것이 얄타협정의 위반이 아닌가 하고 질문했고 스탈린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얄타협정을 완전히 폐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답변했다. 스탈린은 얄타협정을 폐기하기로 결정한 이후 김일성의 남침을 허락했던 것이다. 따라서 스탈린은 아시아에서 만큼은 얄타협정에 의해 성립된 현상태를 변화시켜 미국과의 냉전대결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기 위해여 정책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탈린이 이렇게 정책 변화를 모색하고자 했던 이유는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한국전쟁 직전에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이 중국대륙을 차지함으로써 전략적 지대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스탈린은 이렇게 유리한 상황을 이용하고 싶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서 베를린 봉쇄 때 당한 굴욕에 대한 앙갚음이다. 1948년 소련은 유럽에서 미국의 정책에 대응하여 서베를린시를 봉쇄하였으나 미국의 주도하에 강행된 공수작전에 의하여 1949년 베를린 봉쇄를 철폐했다. 유럽에서 미국의 봉쇄정책에 의해 수세에 몰리고 있던 스탈린은 아시아에서 적극적인 공세정책을 펼침으로써 서 베를린 봉쇄 때 당한 굴욕을 앙갚음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하고 지원하기로 한 것은 단순히 미국을 시험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북한을 이용하여 38선을 뛰어넘는 롤백정책을 추구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스탈린이 롤백정책을 통해서 이루고자 했던 목적은 미국과의 냉전 대결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는 것이었다. 또한 스탈린은 한국전쟁을 일으키기 이전에 미국의 개입을 예상하고 중국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한다. 그래서 남침 후 미국이 개입하여 전쟁이 만주로 확전되면 미국을 만주로 끌어들여 섬멸함으로써 냉전대결에서 승기를 잡고자 했던 것이다. 스탈린이 중국을 한국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했던 여러 가지 시도들은 미국의 개입에 대비하여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스탈린은 롤백정책을 통해서 이루고자 했던 정치적 목적들을 살펴보자. 저자에 따르면 스탈린이 이루고자 했던 정치적 목적은 세 가지 이다. 첫 번째는 일본이 미래의 군사강대국으로 재부상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소련을 제외하고 일본과 단독강화와 동맹을 맺으려고 함으로써 소련은 북한의 남침을 승인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는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통하여 미국과의 냉전대결에서 상징적인 효과를 거두고자 하였다. 소련은 미국의 영향권에 있는 남한을 흡수함으로써 미국의 위신에 타격을 가하고 역으로 소련의 위신을 상승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세 번째는 미국과의 냉전대결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고자 한 것이다. 미국이 만주로 확전할 경우 만주에서 미군을 격멸시킴으로써 미국의 군사력에 타격을 가하고 그 결과 냉전대결에서 승기를 잡고자 했던 것이다.
저자의 논문은 한국전쟁에서의 소련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소련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북한을 수동적인 객체로 그리지는 않는다. 저자는 스탈린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북한의 내부 상황을 이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내부 상황이 아니었다면 스탈린이 북한을 이용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가설의 도출도 가능한 것이다. 저자의 논문은 다양한 경험적 사례들을 제시함으로써 스탈린은 아시아에서의 현 상태를 타파하고 냉전대결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고자 했다는 자신의 가설들을 입증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저자의 설명에서 집중해야 할 부분은 미국의 개입을 예상하고 미국이 개입한다면 미국을 만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는 부분이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서 북한이 압록강까지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스탈린은 왜 직접적으로 한국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알 수 가 있다. 저자의 이러한 가설에 의하면 스탈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