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간관
1)전체적 존재
2)사회적 존재
3)목표 지향적·창조적 존재
4)주관적 존재
3. 주요 개념
1)열등감과 보상기제
2)우월의 추구
3)가상적 목적론
4)공동체감
5)생활양식
6)가족구도와 출생순위
7)신경증적 생활양식 : 응석의 생활양식
4.상담의 목표와 과정
1)상담목표
2)상담과정
(1)관계 형성하기
(2)개인의 생활양식 탐색하기
(3)통찰력 가지기
(4)재정향 돕기
어린 시절 아들러는 구루병과 폐렴 등을 앓아 병약하게 지냈고 형 지그문트에 대한 질투심으로 열등감을 지녔다. 동생의 탄생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동생에게 빼앗기면서, 아들러는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았고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런 경험은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받아들이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아들러는 3세 때 자기 침대 옆에서 동생이 죽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자신의 병약함과 동생의 죽음은 아들러로 하여금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의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였다.
1902년 가을, 프로이트는 아들러를 자신의 토론 그룹에 초대했고, 후에 이 모임은 1910년 아들러가 의장이 된 비엔나 정신분석학회로 발전했다.
초기에 프로이트와 아들러는 조화로운 관계를 보였다. 그러나 아들러는 자신의 이론에 대한 엄격한 충성과 획일화에 대한 프로이트의 압력이 원인이 되어서 1년 후인 1911년에 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한다.
그 후 대부분이 사회주의적이고 교육적인 이념을 강조하는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자유정신분석학회’라는 모임을 결성하고, 1912년에 ‘개인심리학’의 개념을 가지고 ‘개인심리학회’를 탄생시킨다.
아들러는 군의관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오스트리아 정부의 부탁으로 신경증 학생들과 그 부모들이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아동상담소를 설립하였다. 이는 현재 지역사회 정신치료소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때 그는 교사, 사회사업가, 의사 그리고 다른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현장실습 장소로 비엔나의 공립학교에 최초의 아동상담소를 설립하였다
유럽에서 나치의 압제가 시작되었던 1935년, 사회적으로 평등한 사회에 관한 급진적인 사상을 가졌던 아들러는 미국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37년 스코틀랜드 에버딘에서 순회강연 중에 사망하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아들러의 사상에 대해 아주 심한 거부반응을 나타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개인심리학은 다시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루이스, 라트너, 스펄버, 특히 드라이커스와 그의 많은 미국 동료들과 학생들에 의해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다시 조명받기 시작했고, 그 이후 오늘날까지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있다.
이론을 도그마화 하려 했던 프로이트와는 달리, 아들러는 이론의 체계화보다는 문제를 지닌 자를 실제로 돕는 데 이론의 중점을 두었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