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인 현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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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과학적인 현대사회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과학적인 현대사회
읽기자료 1. 산업화의 빛과 그늘
산업화가 생활수준을 향상시켰지만 고통 또한 커졌다 특히 생산 라인에서의 작업의 단조로움과 산업화에 의한 발전으로부터 비롯된 직업의 멸종은 문제였다.
공학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 뿐만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생산비용을 낮추고 삶의 수준을 꾸준히 향상시켜온 효율적인 생산 공정 설계가 바로 후자에 속한다. 수공업에서 현대적인 대량 생산으로의 역사적인 전환은 투자자들에게는 수익을, 소비자들에게는 구매 가능한 다양한 상품들을, 노동자들에게는 임금 인상을 가져다 주었다. 산업 발전의 열매를 이 세 그룹 사이에서 어떻게 분배하느냐 하는 문제는 가장 광범위하게 토론된 대중적인 논제이기도 하고 시민들의 정치적인 의사결정 과정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전사고, 지루함, 기술의 퇴화, 반복적 스트레스의 고통, 그 외에도 생산적 노동자의 일상적인 고민 등은 생산 경제와 강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산업공학 현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읽기자료 2. 시(時)테크의 함정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라고 부른 근대의 에토스는 독특한 생활방법론과 상응한다. 근대의 프로테스탄트들은 인간을 욕망과 충동에 휩쓸리는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모색했다.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될 수 있으면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부부간의 성교도 절대 쾌락을 느끼지 않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며, 채식과 냉수욕을 장려한다. 이때 노동은 욕망을 억누르는 최고의 경찰 노릇을 수행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의 삶에서 나타나는 가장 놀라운 변화는 시간표의 도입이었다. 원래 시간표는 중세의 수도원에서 생겨난 것이다. 수도원에서는 도를 닦는데 방해가 되는 충동이나 잡념을 억제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시간표가 이용되었다. 하루 동안 할 일을 시간 순서에 맞추어 적어 놓고 모든 행동을 그것에 맞춘다면 잡념이 들어오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프로테스탄트들을 통해 숲 속 외진 곳에서 도시 한 복판으로, 그리고 각자의 가정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시간표는 사람들의 삶을 계산 가능한 형태로 바꾸어 주었다. 자신들의 의지로 행동을 통제하기 보다는 의지를 포기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에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오히려 원하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확실히 중요한 전환이다. 합리적인 시스템이 개인들의 일상생활의 수준을 넘어서 조식이나 제도의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 관료제다. 의지나 정신을 포기함으로써 본래의 의지나 정신이 원했던 것을 생산해내 주는 합리적인 시스템인 관료제를 베버는 기계라고 불렀다. 그 어떤 기계도 근대의 복잡성과 대면해서 그토록 효과적인 처리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나 자기 관리를 위한 수단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기계가 되면 질적인 차이가 생겨난다. 이 질적인 차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기계와 노동 수단을 혼동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그는 기계가 노동자의 수단으로 등장하지 않으며, 기계는 더 이상 노동자의 활동을 대상에 전달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노동자야말로 기계의 작업을 돕고 관리한다고 했다. 노동수단과 노동자의 관계에서 생산자는 노동자이지만 기계와 노동자의 관계에서의 생산자는 기계다.
생산적이고 능동적인 인간은 사라진다. 생산하는 것은 관료제라는 기계다. 인간 역시 기계의 생산 작업에 동원되는 부속품일 뿐이다. 소명 의식에 불타던 근대인은 언제부턴가 주어진 절차와 규정에 의거해서 수동적으로 일 처리에 동원되고 있는 암울한 근대인으로 돌변해 버렸다. 자기 자신의 반성적 힘과 내면적 성찰에 의해 스스로의 행동을 지배하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현실로 나타난 것은 다양한 의미들의 경쟁이기보다는 의미의 실종이었으며, 신비주의가 아니라면 기계적 활동에 자신을 던져야 하는 막다른 길목이었다.
토론주제 하나
농업과학기술이 발달하여 농업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대한 건 사실이지만 이전 보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자연도태설을 주장하며 그저 자연의 법칙에 따라 밀려난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연도태설은 타당한 주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