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충서의 개념과 의미
1) 충의 개념과 의미
유가의 충서관이 많은 사람들에게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증자의 언급에서 비롯되었다. “공자가 말했다.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뚫는다.’ 중자가 말했다. ‘알았습니다.’ 공자가 나가니, 문인들이 물었다. ‘무엇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증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는 충서일 뿐이다.’”
증자는 여기에서 하나로써 관통하는 공자의 도를 충서로 여겼다. 충을 서와 관련시키는 증자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후학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충과 서를 해석 하했다. 후학들이 이 부분에 대해 여러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증자의 이 말에 대해 공자가 언급한 내용이 「논어」에서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충과 서를 직접적으로 연결시켜 말한 내용 역시 「논어」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충을 서와 직접적으로 연계시키지 않고, 다른 개념과 관련시키면서 말하였다. 그리고 공자는 「논어」에서 충을 말하면서도 충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충을 진실, 충실, 믿음, 정성스러움, 말, 효도, 사랑, 공경, 섬김, 관계, 평상심 등의 의미와 연계하여 언급했다. 이것은 그가 충을 내적인 마음 자세가 배제된 상태의 외적인 손과 발 등의 단순한 육체적인 동작이나 가치가 배제된 상태의 지식과 관련시키는 방법으로 성명하지 않고, 마음을 진실하게 하여 공손한 태도로 생활하는 것과 같은 도덕적 의미로 성명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그의 관점에 의하면 충이란 태어날 때부터 갖추어진 진실한 마음을 다함이라는 의미와 깊게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충에 대한 공자의 이러한 의미는 「맹자」와 「설문해자」에도 반영되고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충을 “공경함이다. 마음을 다하는 것을 충이라고 한다.” 고 지적하고 있고, 단옥재는 「설문해자주」에서 “공경함은 엄숙함이다. 마음을 다하고서도 공경하지 않은 자는 아직까지 있지 않았다. 이것은 신(愼)을 근(謹)으로 풀이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고 지적한다.
또한 「주례소(周禮疏)」에는 충을 중심으로 여겼는데, 황간은 충을 진실함과 함께 마음의 영역이며 모든 행동의 주인일 뿐만 아니라, 중심(中心)을 다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고 북송의 형병도 충을 황간과 같이 중심을 다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정이는 충을 천도와 망령됨이 없음과 본체로 보았다.
그리고 남송의 주희는 충을 마음의 영역으로 여기면서 “자기를 다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자기’란 사리사욕의 상태에 있는 자기가 아니라, 사리사욕이 없이 천리가 보존되어 있는 상태의 자기를 말한다. 주희는 이러한 상태에서 본래적으로 선한 자기의 본성을 순수하게 발현하는 것을 충으로 여긴다. 그리고 명말청초의 왕부지는 자기를 다하는 것을 충으로 여기고 자기의 이치를 다하면 세상의 이치를 관통할 수 있다고 했으며, 조선의 정약용은 충을 중심과 관련시키고 있는 「주례소」와 형병의 「논어주소」의 내용을 타당하다고 생각했으며, 청대의 유보남은 자기가 서고 자기가 통달하는 것을 충으로 여겼다. 이철승, 유가사상에 나타난 ‘충서(忠恕)’ 관의 논리 구조와 현실적 의미 제58집 한국중국학회 2008. p427~429
2) 서의 개념과 의미
전통의 유가에서 서에 대한 개념과 의미는 비교적 풍부하게 전개되었다. 증자가 공자의 도를 충서의 의미로 말한 것에 대해 공자가 직접적으로 반응하지 않은 것과 달리, 공자는 서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였다. 서는 개인의 삶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개념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일이나 불선(不善)의 내용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심리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이러한 논리를 「논어」의 또 다른 부분에서 인(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는 집밖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큰 손님을 맞이하듯이 공손하게 대하고, 백성을 부리는 것을 큰제사를 받들 듯이 하며,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않으면 나라에서 높은 벼슬을 하거나 어느 가문의 가신으로 있을 때에 원망을 받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싫어하는 그 마음을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는 태도를 인을 이루는 중요한 방법으로 생각하였다. 곧 그는 서와 인을 서로 다른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매우 밀접하게 관계하는 개념으로 여긴다. 공자는 자공과 대화하면서 적극적인 의미로 인을 설명한다. “자공이 말하였다. ‘만일 백성에게 널리 베풀어서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어찌 인을 일삼는 정도이겠는가? 반드시 성일 것이다. 요임금과 순임금도 그것에는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셨다. 인한 사람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다른 사람을 서게 하고,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 다른 사람을 통달하게 한다. 가까운데서 취하여 비유할 수 있으면 인의 방법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공자가 서와 밀접하게 관계하는 인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나 가치 있는 일을 하고자 할 때, 그 마음을 미루어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의 이러한 자기의 하고자 함을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미치라는 관점은 이후의 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맹자는 “서(恕)를 힘써 행하면 인을 구함이 이보다 더 가까운 것이 없다.”고 하며 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것은 자기의 내부에 본래적으로 갖추어진 도덕의식을 사회에 실현함을 의미한다.
「설문해자」에서도 서를 “인”으로 여기고 있는데, 단옥재는 「설문해자주」에서 “공자는 ‘가까운데서 취하여 비유할 수 있는 것을 인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고, 주희는 “자기를 미루어 다른 것에 미치는 것을 서”라고 했는데, 왕부지 역시 자기를 미루는 것을 서로 여기고 자기의 뜻을 미루면 세상의 뜻을 관통할 수 있다고 했으며, 초순은 자기를 완성한 것인 충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어 미치는 것을 서로 보았다. 이철승, 유가사상에 나타난 ‘충서(忠恕)’ 관의 논리 구조와 현실적 의미 제58집 한국중국학회 2008. p429~431
2. 충서의 논리구조
전통 유학에서 말하는 충서관, 특히 논어에 나타난 충서관은 충과 서가 각각의 특징과 의미를 띠기도 하지만, 충과 서는 긴밀하게 관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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