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퇴계 이황 고봉 기대승
(0) 성리학을 이해하는 우리의 기본 자세
사람에 따라서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이성과 감성처럼 이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서양철학에서는 이성과 감성을 나누어 놓고 본니다. 따라서 둘의 관계는 이원적이며 서로 대립적입니다. 이 같은 생각은 칸트가 강조한 ‘순수 이성’이라는 표현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칸트가 말한 순수 이성은 감성과 완전히 분리된 순수한 이성만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성리학에서 말하는 본성과 감정은 일원적입니다. 사람의 모든 감정은 본성에 근거한 것이며 그 본성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 감정일 뿐입니다. 예를 들면, 본성은 이러한 감정이 일어나기 전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막 눈을 뜬 상태나 고요히 명상에 잠긴 상태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즐겁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감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식사를 하면서 맛있는 반찬을 대하거나 흥겨운 음악을 들으면 즐거운 감정이 일어납니다. 또는 출근길에 반가운 친구를 만나서 기쁜 감정이 일기도 하고 직장에 나가서 일이 뜻대로 안 되면 화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구체적인 감정들은 모두 본성에서 나옵니다. 현실 속의 인간은 기뻐할 일에 마땅히 기뻐하고 분노할 일에 마땅히 분노하는 존재입니다. 그러지 못하면 사람다운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잔치자리에서 펑펑 울어대거나 부모가 돌아가셨는데도 깔깔대고 웃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가리켜 실성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실성이란 사람다운 본성을 잃어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모든 감정은 마음속에 들어 있는 본성이 밖으로 드러난 것 일뿐입니다. 아직 어떠한 구체적인 감정으로도 드러나지 않은 상태가 본성이고, 본성이 어떤 일이나 사물과 만나 밖으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 상태가 감정입니다. 김교빈, 『한국철학에세이』, 동녘 2003, 138쪽
(1) 이황의 생애와 “호”에서 알 수 있는 이황의 성격.
이황은 1501년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에서 진성 이씨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집안 사정이 어려웠으며, 12세 때부터 작은 아버지에게 공부를 배웠다. 집안일을 도우며 공부하던 이황은 34세의 늦은 나이에 과거 시험에 합격해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기회만 되면 벼슬에서 물러나 산림에 묻혀 지내려고 했다. 뒷날 자신의 호를 퇴계라고 지은 것도 이 같은 생각을 잘 드러낸 것이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국철학스케치』, 풀빛 2007, 174~175쪽
퇴계는 복잡한 세상에서 물러나 시냇가에 머문다는 뜻이다. 이황은 벼슬에서 물러나 학문에 전념하기로 마음을 정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조그만 집을 짓고 살았다. 그때 그 곁을 흐르는 물 이름이 토계(兎溪)였는데 이황이 퇴계로 고치고 자신의 호로 삼았던 것이다. 그 귀 제자들이 많이 몰려들자 도산(陶山)으로 옮겨 서당을 짓고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남은 생애를 보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국철학스케치』, 풀빛 2007, 174~175쪽
(2) 시대적 배경
이황이 살던 조선 중기는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이황이 태어나기 3년 전 무오사화가 있었고 4세가 될 무렵 갑자사화가 일어났다. 19세 때는 기묘사화가 있었고 45세 때 을사사화가 벌어진다. 을사사화 때는 이황 자신도 관직에서 물러났고 그의 형은 귀양 가던 도중에 곤장 맞은 후유증으로 죽고 말았다. 이처럼 그의 삶 전체가 사대사화와 얽혀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국철학스케치』, 풀빛 2007, 175쪽, 176쪽
(3) 사단칠정
① 사단칠정
㈀ 사단은 사람 마음에 들어 있는 도덕적 감정이고, 칠정은 욕망을 포함한 일반 감정이다. 그 가운데 사단은 인간의 본성을 착하다고 보았던 맹자가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던 네 가지 실마리다. 이 네 가지는 남의 어려움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국철학스케치』, 풀빛 2007, 175쪽. 176쪽
본래 성리학에서는 본성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 감정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아침에 막 눈을 뜬 상태에서는 별다른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를 가다 친구를 만나면 반갑다는 느낌이 생기고 선생님께 칭찬을 받으면 기쁘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때 아직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본성이라고 하고 친구를 만나거나 칭찬을 받아서 생긴 느낌을 감정이라고 한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국철학스케치』, 풀빛 2007, 175쪽
그런데 본성은 언제나 바른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있으며 그 가능성의 근거가 사단이다. 왜냐하면 사단을 잘 길러 나가면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제대로 갖춘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단은 항상 좋은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이 밖으로 드러난 칠정은 그렇지 않다. 칠정은 각각의 감정이 알맞게 드러났느냐, 아니면 너무 많거나 또는 너무 적게 드러났느냐에 따라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한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국철학스케치』, 풀빛 2007,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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