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과 행함 및 배움과 익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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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앎과 행함 및 배움과 익힘
1.고대시대의 배움
‘배움’ , ‘앎’ 이란, 우리가 살기 위한 지식, 과학, 기술, 발전, 상식, 혹은 교양과 문화까지 배우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재 사회는 복합적인 요인이 많고, 지식이 방대해지며, 정보가 넘처나는 사회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어쩌면 우리들은 불쌍한 삶을 살아가는 정보와 지식의 노예 속에서 필요 없는 것 까지 배우며 살고 있다. 그런데 과연 과거에는 어떤 배움과 교육을 실천했을까?
중국의 첫 문명이 발생한 황하강 근처에서 기원전 3000년경 큰 강의 유역지대에서 발달한 최초의 인류문명들 중의 하나였다. 그 전에는 주로 수렵과 채집을 하면서, 1차원적인 사고를 가지고 부족정벌에만 힘쓰는 유목민의 생활을 하며,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 사이에 앞서 이야기했듯이 발생된 농업사회는 어쩌면 정착과 동시에 마음의 평화를 얻으며, 그들에게 새로운 문화적인 충격을 가져다 준 것임에는 확실하다. 지속적인 농경생활과 안정적인 유목생활로 삶의 여유를 찾고, 늘어나는 인구를 이제는 부족국가와는 차원이다른 새로운 관리체계가 필요했고, 그 관리를 위한 새로운 지식습듭 및 발견히 시급해졌다. 과연 고대 중국은 어떤 식의 교육을 통한 인성의 발전을 했는 지 알아보자.
글자의 발견
BC1600~BC1046년 중국의 은나라가 세워진다. 그리고 엄청난 발견이 같이 따라오는데, 바로 갑골문자의 발견이다. 갑골문자는 은자라 때 점치는 데 사용했던 귀갑, 우골에 새긴 문자, 귀갑문자, 귀갑수골문자라고도 하며, 은나라의 옛 왕도 자리인 은허에서 발견되었다. 쓰여진 내용이 복점에 관한 것이므로, 이걸을 ‘은허복사’또는 간단히 ‘복사’라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현재 중국의 상형문자의 시조가 발명되었던 것이다. 물론 점을치는 간단한 이유에서부터 시작을 했다지만. 토템적인 상징에서 문명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무언가의 절실한 요구가 어쩌면 상현문자의 등장을 초래했던 것을 아닐까 ? 그렇게 상형문자는 점점 구조와 골격을 갖춰가며 중국인들에게 차츰 익숙해 지기 시작하였다
종이의 기원
그런데 과연 글자만 가지고 학문이 발전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글자 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종이다. 무엇인가를 쓰고 남긴다는 것 만큼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 용이한 것도 없을 것이다. 구전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글로서 전해지는 종이를 이용한 책들은 보관만 잘한다면 몇 백세기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 물론, 고대 중국의 공자 (BC551~ BC479)시대에는 없었다. 종이는 동한시대 89년~105년 사이에 나온 전 세계최초로 우리가 종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에 기초가 되는 채륜지가 발명이 된다. 그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대나무위에 글을 세기거나. 목판을 깎는 등, 현재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을 방법으로 후세에 전했다. 그렇다 보니, 보관이 용이하지 않아 금세 대나무가 갈라지거나, 목판의 글씨가 사라지는 등의 불편을 겪어야 했으나, 종이의 발견과 함께 중국의 배움의 역사 또한 진보하리라는 것은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공자의 등장
공자(BC551~BC479)는 송나라 미자의 후손이며, 아버지 숙량흘은 안씨의 딸 징재와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나면서부터 머리 위가 오목하게 들어간 고로 인하여 구라고 이름지어졌으며, 춘추전국시대 나라의 혼란스러운 상태에 태어나 늘 아픔을 간직하며 특히, 3세때와 17세때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은 난세를 살아가는 어린 청년으로서는 겪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잡고 19세때 결혼한 공자는 노나라 맹리자가 죽으면서 그의 아들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들어가, 멀리 제나라까지 이야기가 흘러간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한 질문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또한 여러나라에서 그의 덕목을 인정받으며 그는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았고, 그 후 그는 그 공산불효, 조나라, 위나라등 시국에 따라 움직이며, 힘든 삶을 보내다 73세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의 말씀인 ‘논어’는 구전되 후세에 전해지며 맹자나 순자 등 옛문헌에 공자의 말이 인용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전부이며 논어라는 서명은 공자의 말을 모아 간추려서 일정한 순서로 편집한 것이라는 뜻 이외에 누가 지은 이름인지 누가 엮은 건지에 대해서는 무수한 설만 난무할 뿐 뚜렷이 나온바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고대 중국의 교육‘은 공자의 이전 시대와 공자 후의 시대로 나뉘는 것만 큼은 분명한 사실 일 것이다.
고대중국의 배움
앞서 말했듯이. 공자이전과 공자 이후 시대의 배움이 다르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살면서 배우는 과학, 수학, 국어, 외국어, 등과 같은 분야가 나뉘거나 지식습득의 목적으로만 있는 것이 아닌 문화, 교양 등 포괄적이지만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며 진정한 덕을 행사하고 군자(君子)의 길로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 반고(32~92)의 『백호통의』에 나오는 말을 인용해 본다면, 교육(敎育)은 ‘배움과 깨달음이라고 나왔으며. 장읍(7C경)의 『광아』에는 ’배움은 앎과 본받음으로 여기고 있다고 했다. 6세기정도의 차이가 나는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본다면 고대 중국의 교육은 깨닮음 그리고 앎, 본받음, 이라고 생각이 된다. 즉, 아직 깨닳지 못하는 사람이 깨달음을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새로운 지숙의 전수에 중점이 아닌 중국의 전통사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실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사람답게 사는 법) 공자역시 제자에게 주입식 교육보다는 자신의 행동을 실천하게 하므로 배우게 되는 ‘선(先)생(生)’의 개념을 확실히 보여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