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변명
< 1. 바바라 크루거 : 사진과 언어 >
크루거가 광고계 출신이라는 점은 그녀에게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녀는 포스터와 잡지광고에서 긴장감과 순간적인 감정의 전달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다. 신속한 효과를 낳는 이미지와 스타일의 선택 양자에서 이것이 잘 나타나 있다. 그녀는 유혹적이거나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강력한 이미지들을, 그 그전에 놓여 있는 상투형들을 드러내는 자극적이고 모순적인 주장들과 결합한다. 그녀가 사용하는 경구들은 곧이곧대로 인용한 것이거나 뒤샹의 몇몇 레디메이드들처럼 자신의 의미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작품에 낯익은 울림을 부여해주며 크루거의 말에 따르면 작품은 “전략적인 풍자의 일부”이다. 비록 크루거가 겨냥하는 “신화 폭로”의 대다수가 보편적인 것처럼 보이며 일부는 실제로 그렇지만, 그녀는 후기자본주의의 소비주의, 가부장 사회에서의 권력의 역할, 대중매체의 힘, 여성의 상투형들 그리고 때때로 예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주제들 속에서 그녀는 명백한 특수성을 가지고 보편적인 것을 왜곡하는데,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그녀는 약 2년 정도 미술학교와 대학을 다녔고, 잡지 일과 책 표지를 제작하면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상당기간 일했다. 그녀가 마침 소위 미술작품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을 때 끌렸던 것은 회화와 자수의 과정들이었다. 그것은 4년 동안 지속 되었다. 그 일이 그녀에게 실제로 어느 정도 즐겁고 포근한 작업실 활동을 제공해긴 했지만 단순하게 그것을 계속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사진과 매직이 사이렌 소리를 내면서 자신을 계속 부르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다음으론, 회화를 하면서 자신의 작품에 단어들을 도입한 것이 곧바로 그녀의 회화에 고통스러운 정체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는 글쓰기를 시작했으며 이야기와 시를 퍼포먼스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1978년경에 사진들과 단어들로 작업을 하였다.
그녀의 작업은 여성의 상투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미지와 텍스트의 병치를 통해서 독자에게 메시지를 해독하도록 강요한다. 예를 들면 침묵(“당신의 위안은 나의 침묵이다”), 부동성(“우리는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수동성(“당신의 시선이 내 옆얼굴에 닿는다.”), 구경거리로서의 여성(“우리는 구경거리로 만들어져가고 있다”)을 강조했다. 남성적인 상투형들을 정의하면서 공격성, 위협, 폭력과 테러를 강조한다. 그녀의 작업에서 상투형과 신체적 자세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원래 상투형이 육체가 부재하는 곳에 존재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은 롤랑바르트였다. 그녀의 작품으로 예를 들면, 에서 수동성은 드러누워 있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그녀는 신체의 부분들 손, 발 그리고 머리를 많이 사용하였다. 특히 손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특히 정치 포스터에서 손의 사용이 그러하다. 손은 무수한 다른 이유들 ㅡ 단결, 힘, 수 ㅡ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되었다. EH한 손은 특히 초현실주의적인 묘사에서 신체의 다른 부위들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수많은 설명적인 공간을 갖는 이미지들을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신속한 결과를 약속하는 명료한 전주곡 이다.
< 2. 토머스 로슨 : 미술과 미술가들에 관하여 >
로슨은 개념주의 전통에 속하는 지성적인 미술가이다. 그는 예술과 일상생활에서 재현 문제의 변화를 고찰하는 일이 관여하고 있다. 80년대 초반의 그의 작품은 예술과 대중매체 간의 연관과 관련되어 있었다. 폭행당한 어린이들, 재난의 광경 등 뉴욕 포트스지의 표지 이미지에 기초한 시각의 단색회화들, 신문에 나타난 죄없는 자의 희생, 비인간화 등이 중심 개념이었다. 공공테러의 이미지들에 대한 관심은 공공 권력의 이미지에 대한 관심으로 변했다. 반복과 모방의 체계인 지배문화의 기호로서의 건축은 다시 모더니즘의 회화적인 기호들과 결합되었다.
로슨은 처음 회화를 시작했을 때 회화를 계속 만들어내려는 충동을 갖고 있었다. 대학시절 로슨은 미술의 관점에서 보자면 아주 고립되어 있었다. 그는 세인트 앤드루라는 오래된 대학에 다녔는데 그 학교는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에 있는 중세풍 도시에 있으며 에딘버러에 있는 미술계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는 매우 전통적인 학교이다. 그 당시 로슨이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기이하게도 신문 사진들에 기반을 둔 회화들을 만들고 있었다. 로슨은 일상생활에 직접 어떤 것을 가할 수 있는 회화를 만들고 싶었다. 어떤 것에 대한 분노와 그 분노를 화면에 표현하려는 노력 사이에 존재하는 그런 종류의 거리, 그것이 얼마나 되던 개의치 않고 언제나 그것을 이렇게 계속 현실화 하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 사진기를 어디를 가든지 항상 가지고 다니며 여행 중에 사진을 찍었다. 독일 도시들의 사진들, 밀워키와 로스앤젤레스에서 정말로 진부한 현대 건축을 찾아서 이 모든 다양한 장소들을 방문하며 찍은 미국 도시들의 사진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엽서를 찾아서 가게를 뒤지고 다녔다. 흥미 없는 건물들을 기념하는 엽서, 지역의 기념물들 미술학교가 아니라 교외 어딘가의 다른 장소의 엽서들이다. 로슨은 이 모든 것을 모으고 그것을 바라보고 변화시키기 시작했으며 결국 그중에서 어떤 것을 다른 것보다 좋아하게 되었다.
이렇게 모든 작업이 그리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던, 그가 알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대중적이 되지 못한다면 결코 관심을 얻지 못할 것이고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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