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 생명윤리철학 기사 읽고 비판적 사고
간호인력 개편안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된건 아마 올 겨울쯤이었을 것이다. 천안에 살고 있는 나는, 천안 시의원이 이 정책을 제안했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안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고, 이 사안이 간호학생으로서 그냥 가볍게 지나칠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간호인력개편안이라는 것이 어떤것이기에, 그리도 큰 파장을 불러오게 된것일까?
간호인력개편안의 핵심을 말하자면, 기사에 언급되어 있듯이 임상에서 일하는 간호사 수의 계속적인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간호 조무사들을 실무인력으로 이름을 바꾸고, 대우를 개선해주어 인력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장큰 장점은 누가보아도 알수 있겠지만, 바로 간호 인력의 증가이다. 올학기 수업을 들으면서 얼핏 들은 바로는, 대학병원 같은 곳에서 환자가 간호사 호출벨을 누르면 기본적으로 10분은 기다려야 간호사가 도착한다고 한다. 이런것에 적응을 하지 못할 환자들을 위해, 처음 입원할 때 간호사들은 항상 호출벨을 누르면 10분정도는 걸리실거라고 교육을 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빠른 시간내에 해결 되야 할것이 환자의 불편감일텐데, 이마저도 인력이 부족하니 어쩔수 없이 환자들이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간호인력이 증가되면 환자들도 필요할때마다 빨리 간호사의 케어를 받을수 있게 되어 편리하게 된다. 또한 지금 과중한 업무분담을 맡고있는 간호사들도 인력이 늘어나게 되면 혼자 맡아야 하는 업무를 나눌수 있게되니, 부담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병원에 간호사수가 부족하다는 점은 의료계의 문제로 계속해서 손꼽혀온 일이고, 또 그만큼 해결책이 필요한 사안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간호인력개편안은 간호인력을 임상으로 끌어들일수 있는 방법이 될수 있고 나름 해결책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정책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이 개편안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일단, 환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법안이, 오히려 환자에게 불편함을 주게 될수도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를들어 평소에 정식 간호사에게 간호를 받고 있던 사람이, 새로운 간호인력이 들어오게 되면서 원래는 조무사였던 사람에게 같은 간호를 받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런 상황에서 그들의 마음이 불편해 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과연 이사람이 잘할수 있을까 라는 어렴풋한 불신속에서 간호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다 어느날 그들이 실수라도 하게 되면, 그동안 쌓아왔던 불신은 더 커질것이고, 조무사에 대한 안좋은 인식이 퍼지면서 그들에게 간호를 받기를 꺼려하는 환자가 늘지도 모른다. 이것은 인력을 늘리는것만 못한 게 되는 격이다. 대상자와의 신뢰가 어느곳보다도 중요시 되야 할곳이 의료현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충분한 신뢰가 없는채로 기계적으로 간호를 주고 받게 되는 곳이 과연 진정 환자를 위한 공간이 될수 있는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임상 경력만으로 충분히 질좋은 간호를 제공할수 있다는 이 법안의 가정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숙련된 간호기술만 가지고도 임상에서 환자를 직접 돌보는 일을 할수있다면, 간호학생들은 더 이상 기초 지식을 쌓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모든 대학의 간호학과에서는 학생들에게 간호사로서 갖추어야 할 전문 지식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 그냥 입학과 동시에 실습만을 가르치는 형태로, 교육이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마치 간호학원처럼 말이다. 4년제를 졸업하고 간호사가 되는 사람과 간호학원을 졸업하여 간호조무사가 되는 사람이 같은 임상경력만 쌓으면 같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수 있다는 가정을 이 개편안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간호에서 학문이 끼치는 영향력 자체를 무시하는것과 다름 없는 것이고, 간호를 단순히 경력이 쌓이면 능력이 올라가는 기술직으로만 여기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간호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학문들은 그들의 대상자인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4년동안 전문적인 가르침 아래 습득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4년이라는 긴시간동안 빼곡이 습득된 지식과, 단지 승진을 위해 벼락치기식으로 주입된 지식의 양과 질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때문에 간호실무사가 정해진 임상경력을 쌓고, 필기시험을 통과한다고 해서 대학을 졸업한 간호사와 같은 영역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이것이 불러올 문제들은 아마 적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한다’ 라는 말이 있다. 분명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빠른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 병원의 간호사수를 늘려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꼭 이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머릿수부터 늘려서 해결하자는 식의 방안이 최선의 선택이었나 라는데에 있어서는 쉽게 동의할 수가 없다. 간호사 자격증을 갖고도 일하지 않는 유휴인력이 50%이상 된다고 한다. 그들이 왜 병원을 떠나 쉬고있는지에 대한 원인과 불편감을 해소하여 유휴인력을 활용하는 것이 인력도 늘릴수 있으면서, 질적인 간호를 제공하는데 있어서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급하게 법안부터 통과시킬것이 아니라, 간호사들의 업무 환경에 대한 개선을 우선적으로 실행하여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인력의 증가를 기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간호인력 증가 방안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처음 기사의 제목을 보았을 때, 신선한 충격에 나도 모르게 멍해졌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기까지 많은 난관이 있었을텐데, 결혼을 하자마자 단 하루만에 부모에게 맞아서 죽다니. 세계에 온갖 황당한 풍습들이 있다고 종종 들어왔지만, 명예살인이라는 것은 처음 들어본다. 인터넷에서 명예살인에 대해 검색해보니, 이슬람 문화에서는 꽤나 흔하게 일어나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문화에서는 가족 구성원중 하나가 잘못을 저지르면(심지어 어떤 명예살인의 예에서는 그것이 짧은 치마를 입은 딸에게 적용된 경우도 있었다), 그것에 대해 가족들이 잘못한 사람에게 돌팔매질을 하거나, 사지를 절단시키는 등 각종 잔인한 방법을 통해서 살인을 하는 것이 관습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그것이 불법으로 규제된 이후에도 곳곳에서 몰래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명예살인, 과연 누구의 명예를 위한 살인인지 의문이 생긴다. 이 기사의 사건에서 살인을 저지른 부모는 딸이 그들이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는 것에 있어서, 그것이 가족 전체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으로 판단하여 딸과 그의 남편을 죽였다. 가족 구성원들 가운데 누구 하나가 잘못을 한다고 판단되면, 그것이 가족 전체의 명예를 더럽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아주 틀린말은 아니지만, 나는 이 명예살인이라는 것이, 명예를 위해서라는, 그들이 그들에게 스스로 부여한 일종의 면죄부 아래에서 행해지는 잔혹한 살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결혼을 선택한 딸이 잘못을 한 것이라고 그들의 부모가 판단했을때, 그 잘못에 대해서 그들이 딸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뉘우치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딸을 잘못에 대한 죗값으로 살인을 치루게 한다는 것은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어디에서든 재판에서 유죄판정을 받은 사람이 받을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이 바로 사형 아니던가. 사형 판정을 받기까지는 복잡한 재판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사람을 죽이는것이 정당화 되려면, 이렇게나 절차가 복잡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예살인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유죄에 대한 판단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 죗값이 살인에 해당할만큼 중하다는 것에 대한 판단도 그들이 스스로 한것일 뿐이기 때문에 결코 정당화 될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명예살인이라는 것이 이미 법으로는 금지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법조차도 그들의 관습을 막을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순간이다. 물론 법에 의해 그들은 댓가를 받게 되겠지만 이미 사건은 벌어진 뒤가 아니지 않은가. 법의 역할이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해 댓가를 어떻게 치러지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게다가 명예살인이 매년 수백건 이상씩 일어나고 있다고 하니, 법으로 좀더 엄격하게 규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관습에 따라 행동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그 뿌리 깊은 신념 자체를 바꾸어 놓아야만이 앞으로 이런 명예살인이라는 허울 아래 행해지는 살인을 막을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법의 개정과, 또 그에 대한 홍보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잘못된 신념을 바로잡을수 있는 교육적 정책들도 필요할 것 같다. 그런 교육이 현 세대들의 신념을 모두 바꾸어 놓는것은 힘들다 하더라도, 그것이 앞으로 집안의 부모가 될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영향력을 발휘할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게 작용할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계기로, 관습이나 풍습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경계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것들이지만, 다만 오래전부터 행하던 것이라는 명목아래서 여전히 인간의 생활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대로 관습이 행해져 내려오는 동안, 우리는 그것을 자칫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수도 있다. 관습에 대한 신념이 한번 생각속 깊은곳에 뿌리를 내리게 되면, 그것으로 인한 행동은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히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자연히’라는 점이, 또 ‘아무렇지도 않게’라는 것이 참 위험한 요소인것 같다. 그런 ‘자연스러움’이, “관습에 의한 행동은 그 행동이 옳은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다시 판단할 필요가 없어” 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계속 던지면서 비판적 사고를 하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