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 - 밀리언 달러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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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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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밀리언 달러 베이비
1. 영화 줄거리 요약
(1)시나리오
은퇴한 트레이너와 복서인 프랭키와 스크랩은 낡은 체육관을 운영하다 31세의 종업원으로 일하며 복서를 꿈꾸는 매기를 만나게 된다. 프랭키는 그녀를 무모하다며 한사코 거절하지만 결국 그녀의 트레이닝을 맡게 되고 그녀는 결국 타이틀매치까지 나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붙게 된 복서가 날린 뜻밖의 펀치에 의자에 머리를 부딪히고 그녀는 인공호흡기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메기를 보다 못한 프랭키는 결국 어느 날 밤 매기에게 아드레날린을 주사한 뒤 호흡기를 빼내 안락사 시킨 후 영영 모습을 감춘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모든 상품이 1센트에 판매되는 1센트 가게에서 백만 불 이상의 가치를 가진 물건을 발견한다는 말로 ‘예상하지 못했던 허름한 곳에서 보물 같은 진귀한 것을 얻는다’라는 뜻이다. 프랭키와 매기가 그랬듯 뜻밖의 장소에서 가족같이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행운이야말로 백만 불짜리임을 영화는 말한다.
(2)캐릭터
-이 영화를 감상하는 데에 있어서는 캐릭터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각각 캐릭터 간의 이해관계가 사건들과 맞물려 영화를 진행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랭키 : 한 때 잘 나가던 은퇴한 복싱 트레이너, 소원해진 딸과의 관계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스크랩의 실명을 평생 가슴에 묻어두고 윌리에게 타이틀 매치를 딸 기회를 자꾸만 미루게 하다 결국 윌리를 놓쳐버리고 마는 것을 보면 겉으로는 냉정하게 굴지만 속으로는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랭키는 메기를 만나서 소원해진 딸의 관계와 스크랩의 실명과 그 때문에 미루던 타이틀 매치로 놓쳐버린 윌리의 문제를 위로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그녀에게 준 가운에 새겨진 Mo Cuisble(모쿠슈라)라는 문구는 매기를 얼마나 믿고 사랑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며, 그 것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메기 : 엉망진창인 가족관계와 가난에 찌들어 살던 매기는 복싱을 하겠다는 꿈 하나로 인생을 버텨왔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그 꿈을 이루어냈고, 그 꿈을 더 이상 실현 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삶을 포기하고자한다. 그녀는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프랭키에게 아빠에 관한 몇가지 추억들에 관해 언급하는데, 이것은 프랭키와 메기가 서로 딸과 아빠의 관계를 대변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 것은 곧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고, 그들이 견고한 신뢰로 만들어져있는 관계를 나타내고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크랩 : 그는 은퇴 복서로 마지막 시합 때 실명을 하게 된다. 그는 그 때 그 시합이 복서로서 마지막 시합이라는 것에 아직도 미련이 남는다. 그가 매기에게 자신의 눈이 실명한 사연을 말해준 것은 그녀를 보면서 자신을 대입하고, 그녀를 걱정했기 때문인 듯하다. 또한 그는 영화에서 말했듯이 프랭키가 자신을 보면서 느낄 죄책감과 후회같은 심정 등을 느끼며 그녀에게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일어나서 프랭키가 절망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2. 영화 속의 철학주제 설명
-안락사의 유래
안락사(euthanasia)라는 단어는 ‘훌륭한 죽음(good death)’를 뜻하는 그리스에서 유래됐는데 17세기 초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처음 사용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로마에선 인간 생명에 고유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기에 자살은 물론 영아 살해나 낙태도 허용됐다. 로마 학자인 플리니 디 앨더는 “자살할 수 있는 능력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고도 했다.
-안락사의 역사
안락사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로 부터 시작된다. 이상주의자인 플라톤은 기형아가 태어나면 곧바로 내다버리라고 주장했다. 스파르타에선 관행적으로 영어 살해가 이뤄졌고, 초기 로마나 게르만족 사이에서도 행해졌다. 그러다 기독교의 전파로 인간의 생명은 신의 피조물이란 종교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기형아 안락사는 점차 사라졌다.
중세에는 안락사, 자살 등 생명을 빼앗는 모든 행위를 살인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개인의 자유가 대두되면서 다시 안락사에 대한 논란이 붙었다. 유토피아의 저자인 토마스 모어는 중환자의 의사에 따라 고통 없는 자살이나 살해는 성직자 승인을 얻어 이뤄질 수 있다가 언급했고, 마틴 루터도 기형아 살해를 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