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흐르는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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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후감 - 흐르는 북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흐르는 북
1. 들어가며
이 소설을 읽고 나자마자 연상되는 소설은 염상섭의 ‘삼대’와 채만식의 ‘태평천하’였다. 왠지 분위기가 약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각해 본 결과 할아버지-아버지-아들의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이런 소설들을 생각나게 한 것 같다. 결국 가족 중심으로 소설이 전개되어 나간다는 것인데, 가족 내 세대 간의 갈등을 소재로 하여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염상섭의 ‘삼대’에서도 그랬고 채만식의 ‘태평천하’에서도 그랬듯이 최일남의 ‘흐르는 북’에서도 그 가족 중심의 소설 전개 구조를 그대로 취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족 중심의 소설 전개 구조를 사용하는 이유와 그 효과적인 측면이 궁금해졌다.
일단 ‘가족’이라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속해 있고 또한,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가장 작은 하나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가족이 있어야만 그 가족들이 모여서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더 나아가 국가까지 이루게 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는데, 누구도 이 가족을 선택할 수 없고 이 가족을 통해서 어렸을 적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고 가족들 간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배워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의 원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특히 앞서 언급했던 ‘삼대’라든지 ‘태평천하’ 그리고 바로 이 소설 ‘흐르는 북’의 경우에 가족 내에서 특히 세대 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설의 전개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세대 간의 어쩔 수 없이 생기게 되는 갈등과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교체되면서 생기는 사건들이 결국 역사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함축하고 있는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각 세대의 서로 다른 가치관을 통해서 현실의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한국의 소설에서 가족 중심의 전개라는 장치를 사용하는 작품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2. 인물 중심의 갈등 구조 분석
이 책을 읽으면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원래 단편 소설이 그렇듯이 한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사건과 주인공의 생각위주로 담담하게 전개하면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웃음도 자아낼 수 있게 풍자적인 문체로 그려내고 있어 재미가 더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뼈대가 완전히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라는 것이 더욱 소설 속에 빠질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다. 단지 그것에 살을 붙여서 민 노인이 ‘북’에 미쳐서 젊은 시절 타향을 떠돌았다거나 민 노인의 아들이 자수성가해서 출세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등의 약간의 특수성을 부여한 것을 볼 수 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 소설의 배경이 1980년대의 서울이라는 것이다. 근대 한국에서 생활의 주요 무대가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가면서 인간성의 상실이 일어나는 시기가 바로 1970년대에서 1980년대이기 때문에 눈여겨볼 만하다. 물론 작가가 소설을 쓴 시기 역시 1980년대 중반이기 때문에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1980년대인 것은 당연할 것일 것이다. 그래도 이러한 배경에서 도시의 소외되어 가고 있는 사람을 소재로 인간성 상실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던져주고 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민 노인의 아들이 도시의 중산층을 대표하는 계층으로 그려지면서 1980년대 도시 중산층의 이기적인 삶의 세태를 아울러서 생각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점도 재밌는 점이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갈등 구조는 민 노인과 민 노인의 아들로 대변되는 본원적인 삶과 속물적인 삶 간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젊었을 적부터 아무것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를 좇아 정처 없이 유랑생활을 한 민 노인이,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가슴에 깊이 새기면서 자라다 결국 자수성가해 출세를 하게 된 민 노인의 아들집에 들어가 살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갈등을 그 커다란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결정하고 있으며 소설 전개를 맡고 있다. 소설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구절인 "벽의 한 부분인 양 자기를 축출하고는 숨소리조차 들여보내지 않을 완강한 거부의 몸짓을 보이고 있는 쇠문"은 이러한 두 세대 간의 갈등과 단절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거부하는 아들과 며느리의 눈초리를 견디면서 살아가야 하는 민 노인의 정신적 고통을 표상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민 노인은 아들의 손님이 왔을 때 외출하여 잠깐 동안이나마 과거 자신의 유랑 생활과는 완전히 반대되고 대립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공간인 아파트를 떠나 있을 때 비로소 나름대로의 기쁨과 일종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민 노인의 아들인 민대찬은 이러한 민 노인과 대립되는 인간형이다. 그리하여 두 부자간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고 단절이 일어나게 된다. 아버지의 방탕하고 무책임한 생활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피눈물 나는 고생 끝에 남들이 출세했다고 부러워하는 지금의 자리를 차지한 그는 가정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가지고 있다. 원래 민대찬이 자신의 아버지를 미워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북’에 미쳐 살아가면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그런 미움과 증오를 넘어서서 두 가지 대립되는 삶-즉, 민익태가 살았던 본원적인 삶과 민대찬이 살고 있는 속물적인 삶-의 갈등으로 심화되는 것이 소설의 또 하나의 문제의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세대 간에 나타나는 특수한 가정의 갈등에서 결국 나아가 사회의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앞서 말했던 도시에서의 인간성 상실과 도시 중산층들의 이기적인 삶의 세태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민 노인과 민대찬의 갈등 구조에서 민대찬의 심리상태에서 특이한 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민대찬이 민 노인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지니고 있으면서 또한 민 노인을 받아들이지 않는 양가적인 심리상태이다. 원래 양가감정은 심리학에서 명시적인 기억(explicit memory)과 암묵적인 기억(implicit memory)을 동반한 개념으로서 자신은 이런 감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암묵적으로 또 다른 감정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민대찬의 양가감정은 약간 다르다. 이것은 민대찬 자신이 술이 취해 민 노인에게 하소연하는 대목에서 잘 나타나 있는데, 그는 자신이 민 노인에게 연민의 감정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북쟁이’로서의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은 그가 아버지의 ‘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즉 그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북’은 자신의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게 한 상징물이며 아픈 기억의 일부분이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있지만 동시에 북에 미쳐서 가정을 버리고 아버지의 역할을 버린 민 노인을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아버지에게 북을 버리지 말라고 말한다. 이 부분이 민대찬의 사고와 가치관을 아주 잘 보여주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일종의 보상심리가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민 노인이 북을 버리지 않으면 북을 옆에 두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치지 못하고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러한 민 노인의 고통을 통해서 자신이 어렸을 적 성장하면서 받았던 상처를 보상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버지와는 달리 가정을 버리지 않고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을 부각시키고 싶어 하는 심리도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정말 자신의 성장기를 불행하게 했던 ‘북’을 곁에 두고 있으면서 자신의 가정을 위한 삶을 더욱더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커다란 갈등구조 사이에 이제는 민 노인의 손자인 성규가 개입한다. 성규는 민대찬과는 다르다. 오히려 아버지인 민대찬 보다는 할아버지인 민 노인의 입장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어쩌면 두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할아버지로 하여금 다시 북을 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아버지에게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을 볼 때 중재자 역할을 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규의 개입으로 인해 부자간의 대립으로 중심을 이룬 2원적인 대립구조가 다시 새로운 3원적인 구조로 바뀌는 것이다. 물론 서로 모두 대립되는 3원적인 구조는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갈등 구조는 어떻게 엮어져 있는 것인가? 여기에서 이 소설의 제목인 ‘흐르는 북’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 소설의 제목을 처음 접할 때 북이 흐른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일단 읽어보기로 하고 그냥 넘어갔었다. 그런데 삼대간의 갈등구조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소설의 전반적인 전개를 생각하면서 이 제목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해 보았다.
3. ‘흐르는’의 의미에 대한 분석
이 소설에서 가장 크게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민 노인과 민대찬이다. 그러다가 손자인 성규는 민 노인을 이해하고 민 노인의 북과 비슷한 봉산탈춤 패에 들어가기도 하면서 다시금 민 노인을 닮아 가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자신의 아버지에게 심하게 야단을 맞고 따귀까지 맞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고 할아버지의 입장을 아버지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부분에서 확실히 성규는 민 노인의 후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민 노인이 살았던 본원적인 삶, 그리고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를 좇아 자유로운 유랑 생활을 하던 민 노인의 기질을 이어받은 것은 거의 이 소설에서 겉으로 드러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뒤에 말하겠지만 민 노인과 성규를 완전히 동일시 할 수는 없지만 그 기질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점을 볼 때 이 소설의 제목이 왜 ‘흐르는 북’이 되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민대찬이 ‘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한 바 있지만 이 소설에서 ‘북’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중요하다. 민 노인의 삶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고, 도시에서 소외되는 계층을 상징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물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