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흐르는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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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후감- 흐르는 북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흐르는 북
「흐르는 북」은 가족사적 소설이다. 민익태(祖)-민대찬(父)-민성규(孫)로 이루어지는 3대를 통해 현실과 이상에의 고뇌와, 세대 간의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세대 간의 갈등은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사에 있어 실제로도 항상 존재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갈등의 양상은 조금씩 다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 가치관을 바탕으로 상대를 이해시키려 하는 데서부터 갈등의 쟁점이 시작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민익태(민노인)은 평생을 북을 치며 살아온 노인이다. 그에게 의미 있는 삶은 오로지 북과 함께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예술의 길을 걷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가족의 울타리에서 과감하게 탈피해 결국 그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노년이 되어 아들의 집에 들어오게 된 이후부터 그는 늘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고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다. 가족을 내팽개쳐두고 자신의 꿈을 이루며 자유와 행복을 만끽했던 만큼 아들내외로부터 차가운 시선을 되돌려 받게 된 것이다.
저놈의 소리, 민노인은 어제 오늘 겪는 일이 아니면서도, 벽의 한 부분인 양 자기를 축출하고는 숨소리조차 들여보내지 않을 완강한 거부의 몸짓을 보이고 있는 쇠문을 향해, 소리 없이 혀를 끌끌거렸다. 7층에서 바닥으로 내려가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고 내려가면서야 민노인은 넉넉한 마음을 회복했다.
남들에게는 편안한 휴식과 안정의 공간인 집이 민노인에게는 감옥과도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노후의 안락한 삶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젊은 시절 열심히 땀 흘려 일해 돈을 모으고 자식들을 돌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과 가족이라는 현실에 묶여 자신들의 꿈을 접어갈 때, 민노인은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원하던 것을 이루며 자아실현을 이루었지만 반면 노후의 안락한 삶은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앞날을 위해 하고자하는 꿈을 포기하고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겨 하고자 하는 꿈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지 하는 문제이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경우는 일단 제외하기로 한다.) 나는 궁핍한 상황에서의 민노인의 행동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을 생각해 조금만 양보했다면 아버지의 역할을 하면서도 북은 칠 수가 있었고, “일고수”는 아니더라도 그 안에서의 소소한 행복도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가족이라는 끈을 가지고 태어나 수많은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는 사회적 역할 뿐 아니라 가족 내 역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민노인은 자신의 꿈에는 충실했지만 자신이 해야 할 기본적 역할에는 무책임했던 사람이다. 내가 만일 아들(민대찬)이라면 아버지를 용서하고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언젠가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들려주신 소설 내용이 생각난다. 중년이 된 아들이 우연히 과거로 돌아가게 되어, 자신이 어린 시절 갑자기 사라졌던 아버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미행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아버지에게는 사랑하는 병든 여인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가족을 버린 대신 자취를 감추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선택했던 것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데 대한 미움을 가지고 있던 아들은 중년이 되어 바라본 눈으로 결국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렇듯 미움과 갈등이란 것은 시간이 지나 더 성숙된 눈으로 되돌아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흐르는 북」에서의 갈등의 심각성은 아들(민대찬)의 마음의 벽이 너무나도 높다는 것이고 거기에 보태어 손자(민성규)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민대찬은 아버지의 부재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수성가한 아들이다. 그에게 아버지가 북을 가지고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어떤 자리에서건 북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북이 상징하는 아버지의 허랑방탕한 한평생이, 일단은 세련된 입신으로 평가되는 아들의 내력에 중요한 흠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아들이 결정적으로 자기의 날씬한 생활 속에서 아버지를 격리시키고자 하는 까닭은, 부담의 차원보다는 아버지를 접함으로써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는, 자신의 고통과 낭떠러지의 세월을 떠올리기 때문이 아닌가 하였다.
-민주주의네 평등주의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오히려 가면 갈수록 가문을 캐는 우스운 풍토니까요.
아버지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의 심리가 잘 보여 진다.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상받을 수는 없지만, 더 이상 그 아픈 추억을 되새기고 싶지 않은 민대찬의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아버지가 북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는다, 빈정댄다, 비꼰다 라고 표현하는 것을 봐서 그가 과거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피해의식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마지막 구절에서는 사회적 지위, 학력, 학벌 등을 따지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실상을 잘 꼬집어서 보여주고 있다.
다만 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있었으면 됐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