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내딛는 첫발은
1980년대는 우울한 시대였다. 정통성이 없는 정권의 등장은 광주항쟁과 같은 역사적인 비극을 불러왔고, 과거로부터 이어진 노동자 계층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개선되지 못하고 있었다. 국민의 자유에로의 열망은 6.29 선언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항복 선언을 받아내었고, 1987년 여름 한여름의 더위를 무색하게 만들었던 전국적인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이즈음에 나타난 방현석은 많지 않은 작품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발표될 때마다 항상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삶과 현실을 그린 작가가 방현석만이 아닌데 유독 그의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던 것은 그가 평균 잡아 한 해에 한 편의 작품을 발표할 정도의 과작인데다가 그의 작품 어느 하나도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튼튼한 기반을 가지고 항상 사람들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내딛는 첫발은」으로 시작한 방현석은 「새벽출정」「지옥선의 사람들」「내일을 여는 집」등 노동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을 집필하였다.
「내딛는 첫발은」의 시작은 고난 속에서 시작된다. 작품 속 무더운 여름날의 노동자들은 열흘간의 파업을 끝내고 승리를 쟁취하였다. 일당 천원을 올렸고, 해고됐던 사무장을 복직시켰고, 손찌검 잘하는 공장장의 공개사과를 받아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승리가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기세에 눌린 사장이 거짓항복을 한 것이다. 승리는 오래가지 못하였고, 노조간부들이 연이어 구속, 해고 등을 당하게 된다. 중심을 잃어버린 노동자들의 결속은 급격히 약화되었고, 온갖 회유와 협박에 노동투쟁을 일으킨 전과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게 되었다.
작가는 노동자 계급을 비롯한 민중이 언젠가는 승리할 것을 믿고 또한 그럴 수 있는 역량을 동시에 이 억압적인 현실 속에서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민중이 싸워나가야 하는 적의 세력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방현석의 작품에 드러나는 그 강렬한 비장함은 그가 가진 튼튼한 현실인식과 이에 기초한 혁명적 낙관주의에서 비롯된다.
소설에서는 현실의 어려움이 잘 나타나고 있고, 또한 그 현실로 인해 갈등하는 노동자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는 것 같다. 억압적인 현실에서의 탈피를 선택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삶과 후대의 노동자를 생각하며 비장함에 빠지고 또한 그것이 어느새 책을 읽던 나에게도 울분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있었다.
이 소설은 매우 짧은 단편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순간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소설 속 인물들을 쉽게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짧은 소설이라서 그 순간의 비장함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작품 속 강범은 노동투쟁의 의지를 대변하는듯한 인물이다. 짧은 소설이긴 하지만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굳은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이주임에게 쓴 소리도 해보고, 소설 후반부에는 구사대에 맞서는 최앞선에서 싸우다 결국 구사대에게 당하고 만다. 강범은 흔들리지 않는 노동자의 투쟁의식의 상징 같다.
소설 속에서 가장 많은 부분이 나오는 용호는 투쟁을 선도하는 선구자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잠시 좌절한다. 경찰서에서도 매몰차게 대든 교선부장과는 달리 그는 분노보다 설움이 앞선다. 그가 한 아이의 아버지이고 한 여자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을 나약한 존재로 인식하고 아내까지 그를 붙잡으며 좌절한다. 하지만 그는 비굴하지 않기 위해서 노예와 같은 노동자의 운명을 물려주는 못난 아버지이지 않기 위하여 다시 일어선다. 어떠한 일에 있어서 선구자는 항상 고통과 탄압 속에 한번쯤은 좌절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좌절을 딛고 일어설 때 진정한 선도자로서 대중들 앞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용호는 좌절을 딛고 일어선 노동운동의 선도자를 대표한다. 아픔을 딧고 일어선 일물이어선지 나는 오히려 계속 강한 모습만 보이는 강범 보다 용호에게 더 관심이 갔다. 내가 비록 시대적 상황이 달라 이 소설을 모두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용호라는 인물이 있었기에 좀더 소설의 내용에 접근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의 두 인물도 중요하지만 난 정식이 이 소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인물이라 생각한다. 물론 선도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용호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정식이 대부분의 노동자들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 대부분은 그들이 일을 하는 것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노동투쟁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현실 때문이다. 억압적인 탄압과 당장 경제적으로 어려운 그들의 환경이 그들을 투쟁에서 멀어지게 하고 억압적인 현실을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억압적인 현실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때 그것은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당장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위하여 투쟁하는 노동자의 의지. 그것을 정식은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잘 표현해준다.
이 작품의 의의는 노동자계급 당파성에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시발점이라는 점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우리 민족문학은 노동자계급의 당파성 문제를 핵심적 과제로 새롭게 떠올렸고 이것을 제외하고는 민족문학을 올바르게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인식상의 중요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구체적 내용은 여전히 추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고 때로는 노동자계급 당파성을 속되게 이해함으로써 그 진정한 의미를 몰각하는 경우마저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계급 당파성을 문학, 특히 소설에서 올바르게 구현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문학의 올바른 진전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방현석의 작품은 바로 이 노동자계급 당파성을 점차적으로 구현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는 것 같다.
올바른 노동자계급 당파성이란 우선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이 현실과 세계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다른 계급에 비해 노동자계급의 입장에 설 때만이 이 현실과 세계를 그 전체적 연관 속에서 이해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을 정적인 과정이 아니라 동적인 과정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입장에 선다는 것이 그 현실의 전체적인 연관을 파악하는 것에 이어지지 못할 때 그것은 자본주의사회의 분업이 강요한 또 하나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그럴 때 그것은 노동자계급 이기주의나 혹은 경제주의에 함몰되는 것이며 이것을 극복할 때 노동자계급의 의식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내딛는 첫발은」에서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투쟁하는 것이 단지 월급 몇 푼을 더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등장인물(용호)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다. 이는 80년대 노동자들의 의식을 대변하는 것이며,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 또한 이러한 노동자들의 의식을 독자들이 알아야 하고, 또한 이러한 노동자 의식이 부족한 노동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같다.
한 작품은 그 시대의 상황을 가장 잘 대변한다. 만일 노동자가 제대로 대우받는 사회에서 이런 소설이 허구로 쓰여 졌다면 이 소설에서 보이는 비장함도 퇴색되었을 것이고, 진정으로 마음에 와 닿지도 않았을 것이다.
노동문학이 등장하게 된 것은 자본주의의 모순, 즉 자본가의 부당한 부의 착취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이 극에 달한 시점이 80년대이며, 또한 노동자의식이 고취된 것도 80년대에 들어서이다. 이 소설 「내딛는 첫발은」은 민주화와 노동자의식 고취가 한창인 80년대 후반에 쓰여 졌다. 다시 말하면 노동자들의 자본가에 대한 투쟁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작품이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비노동자(임금노동자가 아닌 상인, 자본가)에게 왜 노동투쟁을 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돕고, 노동의식이 결여된 사람들에게 노동의식을 고취시키려는 목적에서 쓰여 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싶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80년대 노동자의 모습과 그러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투쟁, 이것이 80년대의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러나 이것이 80년대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로부터 20여년. 과거의 모습과는 달리 노조의 힘이 강해지긴 하였지만 여전히 힘의 논리는 존재하고 있고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어려운 경제상황과 맞물려 현재도 정부와 자본가들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이것은 ‘노동문학이 자본주의라는 체제 하에서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아닐까 난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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