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독인가
그 때 내 나이가 겨우 열 너 댓살 정도쯤 되었을까. 제사를 지내러 시골에 내려갔을 때 훈훈하게 데운 정종을 마셨던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내가 술맛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을 타고 넘어가던 그 야릇한 느낌이 날 기분 좋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렇게 나에게 있어 술을 접한 첫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한 잔일 뿐이었지만 술과 친해졌다는 기분이 들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술은 인류 역사와 함께 탄생했다. 인류가 목축과 농경을 영위하기 이전인 수렵, 채취 시대에는 과실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실이나 벌꿀과 같은 당분을 함유하는 액체에 공기 중의 효모가 들어가면 자연적으로 발효하여 알코올을 함유하는 액체가 된다. 원시시대의 술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모두 그러한 형태의 술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술은 오래전부터 음주문화라는 틀 안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저녁 회식자리에서부터 각종 모임, 심지어 여가시간까지 술과 함께 하고 있으니 인생은 술이라는 말도 괜한 얘기가 아니다. 이런 술자리들이 넘쳐나고 있으니 술로 인한 문제들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엔 하루가 멀다 하고 술로 인한 각종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직장 근무 중 음주로 인한 업무태만, 대학생들의 음주로 인한 사고, 음주 후 폭력사태 등 온통 술에 뒤덮인 문제들로 가득하다. 이런 문제들을 보고 있자면 예전에 느꼈던 나의 술에 대한 첫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수 있을지 한 번 더 생각해본다.
옛말에 술을 잘 마시면 천하보약이지만 과음하면 독주가 된다고 했다. 불경 가운데 법화경에서는 술과 관련해 ‘첫잔은 사람이 술을 마시고 둘째 잔은 술이 술을 마시고 셋째 잔은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렇게 독주가 될 수도 있는 술을 무엇 때문에 마시는가? 그리고 왜 이렇게 나쁜 것을 자꾸 만들어 내는 것일까? 단순히 쾌락을 위해서? 낭만을 즐기기 위해서? 아니면 그저 취하기 위해서? 그러나 술이란 이렇게 하나의 말로 딱 집어 말하기 어려운 어떤 마력 같은 게 숨어 있는 것 같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이 술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하면 조금 지나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술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여 술을 제외하고서는 이야기를 할 수조차 없는 것들도 많다. 술이 없는 예술, 술이 없는 정치, 술이 없는 역사 이런 것은 애초에 언급할 수도 기대하기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술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즉,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의 건국기에 보면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하백의 딸들을 연모한 나머지 그들을 초대하여 술을 대접하여 만취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때문에 해모수에게 잡힌 유화는 그와 결혼하여 주몽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인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술로써 역사적인 큰 흐름이 바뀐 예가 많다.
그리고 술의 유래를 신화적인 부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신들 중 하나인 디오니소스(Dionysos)가 술의 시조로 전해지고 있다. 술의 별칭을 ‘바커스(Bacchus)의 선물’, 혹은 바커스라고도 하는데 이는 후세에 붙여진 명칭으로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에 비견되는 말이다. 그는 산에서 숲속을 뛰어 돌아다니다가 포도를 발견하고 포도주를 처음 만들었는데 그가 그리스로 돌아왔을 때 아카리오스(Ikarlos)란 사람이 그를 환대하였다. 그래서 디오니소스는 그에게 선물로 포도나무를 주고 포도주 담그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 신화는 술을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술은 또 어떠한가. 세계적인 문호나 시성들이 대개 술을 즐기며 술로써 한층 더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술에 취해 물속의 달을 보고 뛰어 들었다는 중국의 시성 이태백, 삼천리 방방곡곡을 걸망 하나 들쳐 메고 술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며 주옥같은 시를 지어 내었던 김삿갓은 물론 위대한 문인들이 많이 있다. 이외에도 훌륭한 음악가, 미술가, 정치가들이 배출되기까지 술의 역할은 참으로 지대했다. 그래서 로마의 정치가이며 웅변가인 키케로는 ‘술이 없으면 낭만이 없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사리를 분별할 수 없다’고 까지 한 것 같다.
그러나 술에 장점이 있듯이 단점도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중국에서 술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우(禹)임금 때라고 전해지고 있다. 우임금은 의적(儀狄)이 만들어 올린 술을 맛보고는 ‘후세에 술로써 망하는 나라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 술을 없애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이 우임금의 선경지명은 거의 들어맞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예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는 술로 인해 생겨나는 병폐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영국의 대 문호 셰익스피어가 ‘술은 사람을 방약무인하게 만드는 악마’라고 한 것은 술의 병폐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알코올은 몸속으로 들어가면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이성을 잃게 만든다. 그리하여 온갖 악행과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물론 술이 모든 사람에게 다 이처럼 악마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며 또 그러한 범죄들이 꼭 술 때문이라고 만은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술이 사람들의 굳어진 감정의 응어리를 풀게 해 주고 숨겨진 열등감을 폭발시키는 묘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것은 마치 악마와 같다. 걷잡을 수 없으므로 술은 인간의 신체를 병들게 하는 주원인이 된다. 잦은 음주는 인체 내의 기관들을 무리하게 만들고 각종 세균들이 쇠약해진 기관들을 침범하게 된다. 술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살펴보면, 우선 술을 마시면 우선 의지력과 정신력이 약해진다. 또한, 인체 생리의 순환 증진에 따른 생명력의 약화가 일어나 비틀 비틀 거리게 된다. 간의 기능도 떨어지고. 체열 손실에 따른 저체온증 현상도 일어난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문제는 술은 술을 부르는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관련 우리나라의 사망 원인 중 1위가 위암이고, 2위가 간암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질병의 원인 중에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술인 것이다.
하지만, 음주를 즐기는 입장에서 본 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도 있다. 매우 절제된 양의 술은 알코올의 화기와 발효식품의 생명력에 의한 심장과 생명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 잔의 술은 심장마비를 줄여 준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말 건강을 해치는 술이 건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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