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전쟁의경과 ~ 3.명의 개입
4.임진왜란의 영향
5.일본의 패배이유
1. 왜군의 구조적 약점과 한계
2. 조선의 국가 시스템
3. 명군의 참전
6. 이순신 장군의 역할
1) 왜군의 구조적 약점과 한계
왜군은 중앙 집권적인 정부의 명령에 따라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국가의 군대가 아닌 각 지방 영주인 다이묘들의 개인적인 사병집단들이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임란 무렵 왜군들은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도 각 다이묘들간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대립과 반목등으로 인해 상호 협조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1군의 고니시와 2군의 가토의 반목과 대립은 유명하구요 전라도 점령을 담당한 6군이 조선군의 저항에 고전함에도 다른 군단에서 나서서도우려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토요토미에게 박해 받은바 있는 지방 출신 왜군들은 이로 인한 반감 때문에 스스로 조선에 투항해서 항왜로서 조선군에 협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왜군에대한 중요한 군사정보와 화승총 제작 기술을 전수하는 등 상당히 중요한 활동을 했습니다. 물론 조선에서도 점령지에서 왜군에 협조하는 반역자들이 나왔지만 이들 항왜는 대체적으로 군사적인 패배로 인해 목숨을 구걸한것과는 달리 스스로 항복해 조선군에 협조했다는 겁니다.
2) 조선의 국가 시스템
왜군의 최대 오판이 바로 수도만 점령하면 전쟁은 거의 끝날 것이라는 판단이였습니다.하지만 조선은 그 이전 왕조들 부터 대륙의 숱한 강적들의 침략을 받아 이에 저항하는 국가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고 이는 일본군 지도부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그들은 조선 이전의 역대 왕조들이 대륙의 강적들의 공격으로 수도가 함락당하고도 국가 기능이 마비되지 않고 유지되어 끈길기게 저항해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겁니다.
3) 명군의 참전
요즘엔 명군의 처절한 전적을 들먹이며 명의 참전 의의를 평가 절하합니다만 분명 명군의 참전은 전쟁의 상황을 반전시키는 중요한 개기였습니다.명의 참전이 예상되자 왜군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들의 부대를 흩어놓지 않고 주요 전략 요충지에 집결 시켰습니다. 이는 각 지방의 미점령지에서 저항하던 조선군에게 한숨돌릴 기회를 줌은 물론이고 전략적 요충지에서 벗어나있어 상대적으로 방어가 허술해진 왜군 점령지에 대한반격도 용이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6. 이순신 장군의 역할
일단 기본적인 전술적인 기여라면 왜군이 호남 지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육상의 곡창지대를 보호했다는 점과 한양 이북의 왜군에게 갈 해상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왜군의 전체적인 진격 속도를 늦추고, 사기를 낮췄다는 면에 있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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