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奇亨度, 1960. 2. 16~1989. 3. 7)
#기형도의 일생
※기형도의 죽음이 가지는 의미
#안개
#질투는 나의 힘
#빈집
#결론
- 기형도는 1960년 2월 16일 경기도 옹진구 연평도에서 3남 4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고, 부친이 서해안 간척사업에 실패하면서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에 정착하여 살게 됩니다. 소하리는 급속한 산업화에 밀린 철거민, 수해 이재민이 정착촌을 이루었던 곳으로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시 “안개”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생계조차 잇기 어려운 가난과 계속된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이른 나이에 삶의 고통을 체험하는 불우한 유년을 보내게 됩니다.
시흥국민학교, 신림중학교,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문학 창작의 길에 들어선 그는 1980년대의 암울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독서와 창작이 유일한 위안이었던 듯, 신문 기자로 활동하는 가운데서도 독창적인 시편들을 꾸준히 발표합니다.
기형도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가 당선되어 등단한 후 1989년 3월 7일 종로의 한 심야극장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단 60여 편의 시만을 발표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생전 자신의 시집을 보지 못한 채 만 29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되었는데, 살아 있는 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던 그는 유고집으로 발간된 “입속의 검은 잎”이 커다란 문학적 반향을 일으키면서 세기말의 징후를 가장 정확히 묘파(=남김없이 묘사해 냄)한 시인으로, 못 다한 젊음과 극적인 죽음으로 인해 시대를 상징하는 시인중의 하나로 끊임없는 관심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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