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시장경제체제 발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주도 아래의 다자간 국제무역 체제의 구축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런데 전쟁 이전의 세계 경제체제인 즉, 1920년대와 30년대의 세계경제는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 간 경제민족주의와 보호무역정책으로 인하여 국제협력관계가 무너지게 되면서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전후 냉전 구도 아래에서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들은 이와 같은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하여 시장 중심의 자유무역질서를 재건하는 것을 목적으로 GATT 체제를 탄생시켰다. GATT 체제가 구축된 이후에 미국 주도의 세계 시장 경제 체제는 WTO 체제로 명칭만 바뀌게 되었을 뿐 커다란 변화 없이 현재까지 국제무역의 부흥과 세계경제 번영을 위한 견인 역할을 수행하며 발전하게 되었다.
미국의 역사에 있어서 자유무역체제를 출범시켰던 GATT체제의시작은 1934년 상호무역협정법(The Reciprocal Trade Agreement Act)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일명 1934년 관세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약 40년 동안 자유무역이라는 하나의 신념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 Gordell Hull이라는 인물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사에 있어서 1943년 상호무역협정법은 관세 논쟁을 종식시키고 대공황으로 침체되었던 미국과 세계 경제를 활성화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법안이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미 헌법이 보장한 의회 권한 중 하나인 관세율 책정이 대통령에게 위임인 된 점, 둘째로 호혜평등을 원칙으로 한 상호협정이지만 최혜국 대우 조항이 내재된 점, 셋째로 3년마다 관세법에 대한 연장을 두어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점이 이전 관세법과 다른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1934년 상호무역협정법에 담긴 몇 개 조항은 미국 관세의 역사적 흐름을 이전 보호무역주의이 입장에서 정반대 자유무역입장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보다 큰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즉, 1934년 상호무역협정법은 미국 통상정책이 보호무역에서 자유무역으로 전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흐름에 있어 스무트-할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스무트-할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을 중심으로 한 1920년대와 30년대 미국의 보호무역정책과 세계경제질서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Cordell Hull의 역사적 활동을 바탕으로 면밀하게 살펴보도록 한다.
본론
Hull 자유무역론 형성
19세기말부터 시작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시기의 미국 산업경쟁력은 세계 제일 공업국인 영국을 추월하기 위한 과정에 있었다. 이와 같은 배경에는 미국이 지속적으로 기술혁신을 하여 제조업 부문의 발달과 더불어 국내 개발이라는 측면도 존재하지만 그 아래에는 정부의 문호개방정책과 보호무역정책이 있었다.
이 시기 국제경제는 해당 골격이 영국 중심의 자유무역 경제체제였으나 유럽의 주요 열강은 자국 우선 경제논리에 입각하여 보호무역정책을 시행하였다. 미국도 고관세 정책을 유지하고 영국, 독일, 프랑스와 경쟁하였다. 그러면서 제1차 세계대전까지 국제 경제는 제조업과 금융, 농업 부문의 활발한 국제적 교류가 있었다. Cordell Hull은 민주당 출신의 미 하원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수행하면서 주로 세제개혁안을 입안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Hull은 미국 내 부유층이 연방정부의 재정부담을 분담하는 데 회피하는 것으로 보았고 이에 따라 1907년 소득세법안을 도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1908년 3월 Hull은 의회에서 처녀 연설을 하였다. 해당 연설에서 그는 공화당의 고관세를 비판하면서 전국적 소득세제의 확대와 반 트러스트 법의 강력한 조치를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의정 초기 Hull이 가지고 있는 경제 관념은 부의 평등을 기반으로 한 수입세와 관세에 대한 개혁안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의정 활동 초기 Hull은 정부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움이 있는 과세 문제와 공공지출문제에 대하여 가장 유명한 전문가가 되었다. 이로써 Hull은 19111년 하원에서 가장 영향력을 가진 세입세출위원회의 위원이 되었다.
1930년 The Smoot-hawley Tariff Act
Fordney-McCumber Tariff Act이 통과된 후 공화당의 Coolidge 대통령이 재직하였던 기간은 기술의 발전이 급격하게 발달하고 특히 그 중에서 자동차의 보급 등 국민 생활 수준이 크게 향상이 되었으며 미국 경제는 과거 어느 때 보다 호황을 누림으로써 기업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 시기였다. 그리하여 Harding대통령은 물론이고 그 이후의 공화당 소속의 대통령과 의회의 공화당 의원들은 Fordney-McCumber Tariff Act 에 대하여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관세법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 관세법은 국가의 기 진행되고 있는 번영에 대하여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대통령과 달리,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의 경우에는 Fordney-McCumber Tariff Act를 국내 및 국제 경제에 있어 모두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닌 해악을 끼친다고 주장을 하면서 비평하였다. 하지만 Fordney-McCumber Tariff Act은 아래의 농업 부문에 있어서 침체, 그리고 전후 유럽 국가들의 대미채무이행문제, 외국 관세 보복조치 등과 같은 복잡한 문제를 불러일으킴으로써 미국 내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첫째, Fordney-McCumber Tariff Act이 시행되고 나서 상공업이 매우 크게 호황을 누리게 된 반면에 농업부문은 극도로 침체하게 됨에 따라 농민들과 민주당으로부터 동 법안에 대하여 비난이 강력하게 제기되기 시작되었다. 농업부문의 침체는 실제로 Fordney-McCumber Tariff Act이 최종적으로 통과되기 전 1920년에서 21년 사이에 가장 극심하였는데, 이것은 유럽이 전쟁의 폐해로부터 벗어난 결과이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과잉 생산이 된 미국 농산물들은 대 유럽 수출의 판로가 막히게 됨에 따라서 미국 내 농산물 가격의 폭락 현상이 나타났다. 이와 같은 미국 농산물의 가격이 폭락하게 되는 현상과 더불어 Fordney-McCumber Tariff Act으로 인해 농민들의 일반 용품과 농기구, 가격 그리고 생활비가 큰 폭으로 인상되자 농민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최병선(2009), 무역정치경제론, 박영사
임광빈(2000), 위기의 세계정치경제,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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