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 왕은 오랜 시간 동안 연극 무대와 문학 세계에서 강한 여운을 남겨왔다. 셰익스피어 작품이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권력과 가족 간의 애증 문제를 극도로 끌어올린 이 극은, 한 왕이 자신의 권세와 분별을 조금씩 잃어가면서도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되찾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결코 온화하거나 단정하지 않다. 어떤 부분은 정말 비극적이고, 또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독자들 눈앞에 펼쳐지는 불협화음 같은 상황이 마치 한편의 악몽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리어라는 인물은 처음 무대에 등장할 때부터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 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나이를 생각해 존중하는 제스처를 취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태도와는 달리 내면에는 걱정이 가득해 보인다. 왕국의 분할을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전부터도 그는 왠지 강박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마치 애정에 대해 강요하듯이 행동한다. 딸들에게 자신의 공로나 업적을 칭송해보라고 지시하는 모습을 보면, 그 자리에서부터 이상한 균열이 생긴다. 그런 행위가 어찌 보면 무대 위의 장치처럼 보이기도 하겠으나, 사실 그로 인해 벌어지는 파장들은 굉장히 복합적이다. 특히 언어로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찬양하고, 정작 진심은 약한 딸들과의 충돌이 극의 중요한 시작점이 된다.
말로만 화려하게 아버지를 추켜세우는 두 딸의 태도에는 그리 아름다운 진정성이 없다. 한편, 세 번째 딸인 코델리아는 과장된 말보다는 조용한 침묵을 택한다. 그 태도가 아버지에게 거부감으로 다가가고, 결국 코델리아는 왕의 분노를 사서 추방당한다. 이 장면에서부터 균열은 확대된다. 마음속 욕망을 조금이라도 드러내고픈 딸들과, 오로지 진실을 말하고자 했던 딸의 태도가 날카롭게 충돌한다. 겉보기엔 아버지를 극진히 위하는 듯하나, 실제로는 재산과 권력을 빼앗으려는 시선이 더욱 두드러진 상황이다. 그게 바로 이 극 전반에 깔린 비극성이기도 하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관계가 가득하고, 온전한 신뢰가 사라진 세계 속에서 리어의 혼란은 거세게 몰려온다.
무대가 진행되면서 리어 왕은 서서히 힘을 잃게 된다. 자신의 군신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게 되고, 손에 쥐고 있던 상징적 권위도 빛을 바래게 된다. 이미 두 딸에게 왕국을 나누어 준 뒤에는, 그가 과연 무엇을 지니고 있을까 의문이 생길 정도로 허망해진다. 더 이상 아버지로서 존경받지 못하고, 말년에 찾아온 배신과 모욕감을 극적으로 체험한다. 폭풍이 치는 장면에서 그는 자연 앞에 맨몸으로 서게 되는데, 그 순간 그의 내면에서 우르릉거리듯 울려 퍼지는 비탄이 시적인 언어로 폭발한다. 자연 현상을 이용해 인간의 무력함이나 고독을 표현하는 기법이 이 작품에서 한층 두드러진다. 바람과 번개가 몰아치면서, 왕이란 존재가 사실 얼마나 허무한지를 보여준다. 드넓은 땅과 백성을 통치하던 이가 결국 바람 하나를 어찌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이 처절하게 드러난다.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리어 왕의 모습은, 어떤 측면에서는 노년의 고집스럽고 편협한 모습이기도 하다. 동시에 위엄 있는 왕으로 살아온 사람의 트라우마를 담고 있다. 코델리아를 내쳤다는 사실 때문에 그 후에 오는 후회는 더 괴롭다. 사랑받고 싶어하며 애정을 갈구하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잘못되어버린 노인의 비극이 선명하다. 그런가 하면 두 딸의 속내도 매우 이기적이다. 그들은 아버지를 필요 이상으로 칭송하며 권력적 이익을 챙기려 애썼고, 결국 나눠 받은 땅을 이용해 왕의 권위를 가차 없이 무너뜨린다. 사람이 한 번 욕망에 사로잡히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딸들에게 실망해버린 노인은 끝내 정신적 혼란을 거듭하며, 그러다가 자신이 무시당하고 잊혀지는 존재라는 데에 몸부림친다.
등장인물들 간의 대립과 극단적 감정은 다른 셰익스피어 비극과도 이어진다. 헬멧이나 갑옷을 입고 전투를 벌이던 장면들이 나올 때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끊임없는 심리적 전쟁이 자리 잡고 있다. 리어 왕 뿐 아니라 글로스터 백작과 그 아들들 사이의 갈등도 흥미롭다. 에드먼드는 사생아라는 이유로 정상적인 사랑을 받지 못했고, 그것에 대한 울분과 열등감이 그를 파멸적 길로 몰아간다. 에드거는 정당한 아들임에도 누명을 쓰고 도망다니면서 신분을 감춘다. 이 중첩된 비극이 결국 무대 위에서 폭발적 결말을 맺는다. 아버지와 자식의 파탄이 한 집안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복수의 가정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이 극을 더욱 참혹하고 복합적으로 만든다.
리어 왕의 서사를 읽을 때, 인간이 권세를 탐하거나 과오를 반복해나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무대에서의 대사들을 접하면, 미묘한 어조와 함축이 깃들어 있어 듣는 이에게 꽤 강렬한 느낌을 준다. 종종 과장된 표현도 등장하지만, 그만큼 인물들의 격정과 분열이 도드라진다.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시적 언어는 장면마다 충격과 슬픔, 때로는 모멸감을 독특하게 자아낸다. 실제 연극 공연을 보는 관객이라면 그 몰입감이 더 강할 것이다. 각 인물이 외치는 절규와 울분이, 말 그대로 공연장 전체를 뒤흔드는 힘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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