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연극 템페스트와 리어왕 비교
내 맘대로 셰익스피어 보기
와 이 두 무대를 보고 나는 상당히 이들의 연극이 불친절하다고 느꼈다. “내용은 이미 알고 있겠지?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너는 이해해야만 해!” 라고 나를 쏘아 붙이는 듯 했다. 하지만 당당히 나는 말한다. 모르겠다. 그냥 내가 느낀 대로 나도 불친절한 관객으로 작품을 마음대로 해석할 것이다.
● 템페스트 와 리어왕의 무대, 문의 개념
템페스트의 무대는 순간이동이 가능 하다. 큰 함선을 보여주기도 하며, 평화로운 집을 보여주기도 하고, 어느 바닷가의 모래사장을 보여주기도 한다. 때로는 과거의 호화스러운 시대로, 때로는 현대의 백화점 명품관으로 배우들은 순간이동을 한다. 그러나 실제로 무대는 고정적이다. 그 위의 소품들과 배경의 이미지가 수시로 바뀌면서 장면이 이동하고 있음을 관객이 인지하게끔 한다. 그러나 무대를 보기 위해 관객들은 세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대를 보는 눈과 배우를 보는 눈, 그리고 자막을 보는 눈. 자막을 보다 보면 무대에 집중 할 수 없다. 무대에 집중하면 무슨 내용인지를 몰랐다. 공연이 반 이상 흘러 갈 즈음 관객들은 서서히 감추고 있던 마지막 눈을 꺼내 무대를 지켜보았다. 서서히 무대와 자막을 같이 보는 것에 익숙해 졌다.
또 하나 템페스트 무대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세 개의 문’이었다. 문의 경계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얼핏 문 밖으로 비추어 진다. 관객들은 문안의 상황을 유추하거나 예상한다. 그러다가도 문이 닫히면 저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기대하고 생각하게 된다. 문이 예상치 못하는 순간에 열림으로써 안의 상황을 짠! 하고 보여주며 관객이 가늠하고 있던 예상들을 확 깨버린다. 문에 시선을 집중시키다가 갑자기 하늘에서 물이 떨어진다거나 무대 뒤편에서 정령들이 나온다던가 하는 반전을 선사한다.
문의 개념은 리어왕의 무대에서도 사용된다. 처음 관객들이 마주하는 건 두 개의 커다란 벽이다. 벽은 배우들의 등장과 함께 문으로 바뀌게 된다. 막을 여는 것이다. 문을 연다는 것은 사건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했다. 벽과 벽 사이 공간으로 리어왕으로 상징 되는 인물이 포인트 조명을 받으며 등장한다. 벽이 문이 되는 순간 리어왕의 불행도 함께 시작된다. 휠체어에 앉은 리어왕은 세 딸 에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유산의 분배 또한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첫째, 둘째 딸은 달콤한 말로 리어왕의 귀를 즐겁게 한다. 그 만큼 많은 유산을 받게 된다. 셋째는 진실을 말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로써 사랑하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리어왕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 이때 문이 닫히게 된다. 리어왕의 마음의 문도 닫히게 된다. 그리고 그 문을 닫음으로써 고독 해지는 것은 리어왕 자신이다. 리어왕 스스로 자신을 고독으로 몰고 갔다.
문 너머의 세계는 리어왕의 환상 세계이기도 하다. 그의 진실 된 마음이기도 하며, 깨달음의 공간이기도 하다. 문 밖의 세상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난무하는 곳이다. 리어왕은 그들의 모습을 직시한다.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스스로 깨닫는다. 모든 과정이 문을 통해 드러나고 리어왕은 문을 닫음으로써 하나의 견고한 벽을 창조해낸다. 문이 열리면서 네 명의 간호가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며 리어왕의 마음을 대신 나타내 준다. 템페스트의 문은 장면 이동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면 리어왕의 문은 리어왕의 내면과 외면을 구분 짖는 역할로 사용되었다. (리어왕 연출자는 문 너머의 세계를 정신병원이라 했고 밖에 세계를 현실이라고 했지만 뭐 내가 느낀 문의 개념은 이렇다.) 그렇게 두 무대에서 ‘문’의 개념은 하나의 극을 이끌어 가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 템페스트와 리어왕의 각기 다른 연출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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