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생텍쥐페리
생텍쥐페리가 남긴 이 작품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으면서도 서로 다른 상상과 해석을 떠올릴 수 있는 면이 돋보인다. 파일럿 출신의 작가가 쓴 이야기에는 자신이 직접 본 하늘과 사막의 풍경이 잔잔하게 녹아 있다. 그곳을 배경으로 혼자 남아 있는 어른, 세상을 이해하려 애쓰는 어린 존재, 마음속에 숨겨둔 소중한 무언가를 되찾으려는 갈망이 안쪽에서부터 빛나고 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 이미지에 매료되곤 한다. 거기엔 한없이 작은 행성과 그 행성을 떠도는 소년이 함께 존재한다. 책장을 펼쳤을 때 바로 등장하는 소년의 모습과, 작지만 강렬한 꽃 한 송이가 머리속에 남는다. 때론 사막의 황량함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사실 이야기 자체는 아주 짧다. 어느 날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이상한 소년을 만난다. 자신을 먼 별에서 온 여행자라 말하는 그 소년은 생소하지만 묘한 매력을 뿜는다.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두 존재가 함께 나눈 대화는 때때로 엉뚱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대화 속에는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잃어버린 진심과 순수함, 정직함에 관한 가르침이 녹아 있다고 느껴진다. 나이를 먹었어도 깨닫지 못했던 감정이 슬그머니 눈앞에 펼쳐진다. 그 대목에서 마음이 탁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허밍버드 클래식으로 출간된 한국어 번역본은 기존의 문체에서 벗어나 좀 더 부드럽고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현대의 소설가와 시인이 참여했다는 점이 흥미를 끈다. 예전에 접했던 번역보다 다정한 느낌이 든다. 원작자가 그린 삽화도 최대한 살려서, 독자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눈으로 이야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 작고 수수한 스케치들이 따뜻하게 마음을 두드린다. 동화처럼 가볍게 읽힐 것 같지만 막상 읽다 보면 묵직한 메시지가 전해진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소년과 장미의 관계다. 장미는 여려 보이지만 자존심이 세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런데도 소년은 그 존재를 지키려 애쓴다. 그 애씀이 때론 서투르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소년은 그 외로운 별에서 그 꽃을 곁에 두고 보살피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낯선 장소에서 피어난 존재라도, 소년에게는 둘도 없는 소중함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머릿속에 자리 잡은 상징이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깊게 다가온다.
여우와 맺는 인연도 뺄 수 없다. 여우가 소년에게 전하는 말 가운데에는 인간관계와 책임감에 대한 의미심장한 표현이 깃들어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과정은 어쩌면 귀찮고 고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결속되었을 때 느껴지는 유대감은 상상 이상으로 중요하게 다가온다.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대상이 하나하나 비범한 가치를 지닌다. 소년이 여우와 대화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순간에, 독자도 일상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작가가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스토리를 풀어낸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몽환적이고 상징적인 분위기를 통해, 인간에게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비행기 조종사와 소년이 마주치는 장면마다 어떤 울림이 있다. 황량한 사막이지만, 그 장소에서 드러나는 내면의 소중함은 꽤나 강렬하다. 소년이 떠나온 작은 별에 대한 이야기, 바오밥나무에 대한 경고, 우물을 찾아 헤매는 여정 등이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 한 장면 한 장면이 동화책의 한 페이지처럼 아기자기하게 다가온다.
처음 읽었을 때, 어린 독자 시절에는 수수한 동화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봤을 때는 전혀 다른 의미가 눈앞에 펼쳐진다. 아이가 세상을 배우는 이야기 같았는데, 어른이 되어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이 놓쳐온 것들을 차근차근 되짚게 된다. 그렇게 어린 시절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외로운 진실이나, 사랑의 본질 같은 부분이 강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삶의 여러 국면에서 반복되는 외로움과 위로가 여기에 깃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맥락에서, 어른이 된 뒤에 다시 읽어보면 더 묵직한 여운이 남는다. 그냥 동심을 찬양하는 이야기라고 단정짓기엔 여러 감정과 질문들이 교차한다. 장미가 품은 자존심, 여우가 가르쳐준 진짜 유대관계,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소통의 기쁨 같은 것들이 얽혀 있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인간이란 무엇에 기대어 살아가는가라는 궁금증이 고개를 든다. 그 궁금증을 깊게 파고들지는 않더라도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간지럽다. 어린 시절엔 그저 신비롭게 봤던 부분이 이제는 삶의 고단함과 맞닿아 있는 장면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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