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해석 도움말
3. 현대어 해석
4. 무릉도원에 얽힌 도연명(陶淵明)의 설화
5. 시의 감상
6. 느낀점
그는 평생의 거의 대부분을 민간인으로 보냈기 때문에, 그의 시는 생활로부터 스며나온 마음의 부르짖음이었으며, 당시 유행하던 귀족적 생활에서 풍겨나온 여유 있는 유희문학(遊戱文學)이 아니라 민간생활 그 자체를 노래한 문학이었다. 따라서 그의 시는 따스한 인간미가 있으며, 고담(枯淡)의 풍이 서려 있다. 형식면으로는 대구적 기교(對句的技巧)나 전거(典據) 있는 표현은 별로 쓰지 않았으므로, 같은 시대 시인인 사영운(謝靈運)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양(梁)나라의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에서는 “고금 은일시인(隱逸詩人)의 종(宗)이라 평가하였으며, 후세에도 똑같이 평가되고 있다.
천재 시인 도연명의 붓끝에서 무릉도원은 동양인의 영원한 꿈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그 전통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사회가 혼란스럽고 전란에 시달릴 때는 사람들의 꿈을 강렬하게 지배했던 이상적 모델로 사람들의 가슴을 휘어잡았습니다.
사람들은 동료인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는 갈등과 긴장에 가장 힘들어한다. 조선조 관료 사회는 특히 사람의 인품의 등급을 평가하는 객관적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받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아주 큰 사회였다. 뜻 있는 선비들은 끊임없이 중앙정계를 벗어나 지방근무를 원했거나 아예 정치권을 떠나고자 했다. 달리 직업이 없어 떠날 수 없었던 사대부들도 마음은 늘 사람이 사람을 재단하지 않는 전원, 즉 ‘자연을 노래하고 꿈꾸었다. 몸은 관직에 있으면서 마음은 산림(山林)에 있었고, 공식적으로는 유학자이면서 비공식적으로는 도가를 흠모했던 것이다. 우리네 선인들의 문학 작품 가운데 반절너머 자연시와 풍류의 글이 차지하고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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