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특징 및 그 원인을 설명하고, 직, 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례를 교재를 중심으로 분석한 후, 건설적인 노사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논하시오.
노사관계론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특징 및 그 원인을 설명하고, 직, 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례를 교재를 중심으로 분석한 후, 건설적인 노사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논하시오.
1. 서론
2. 본론
(1)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특징 및 원인
(2)건설적인 노사관계를 만들기 위한 방안
3. 결론
4. 출처 및 참고문헌
1. 서론
한국의 노동운동은 정치적 상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근대 시기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우리나라 자본이 수탈당하자 적극적으로 투쟁한 최초의 노동자들을 시작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상황이 변화할 때마다 노동운동의 성격도 변화해왔다. 노동자들을 위하여 활동하는 노조는 공평한 가치를 추구하는 민주주의에 가까워 보이나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노조들은 사회주의 방향에 더 가까운 성격을 지녔었다.
노동자들을 대표하여 정책을 제안하고 대외 협력적인 노력을 한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은 작은 의미의 정부라고 할 수 있다. 국민 모두와 대통령과 여당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듯이 노동조합 내에서도 조합의 장과 간부들에게 불만을 품을 수 있다. 노조에 뜻에 따라 원치 않는 파업에 참여하거나 개인과 관계없는 투쟁에 참여해야 하는 등 감수할 점이 많지만 노조의 존재는 노동자에게 필수적이고, 국가 경제 지탱에도 필수적이다. 경영자를 감시하여 기업이 조세 회피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고 경영활동을 감시하는 대리인에 대한 고용비용이 감소되며 이익의 가치를 높여 결과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인다. 노조에 가입된 기업 노동자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데, 조직몰입도를 높이고 이직 의도를 낮춰 기업의 생산성이 향상되는 결과를 낳게 한다.
하지만 임금 극대화를 위한 활동만 지속하여 기업의 미래 현금 자본 확보를 어렵게 하고 이로 인하여 기업의 채무 불이행 위험성이 높아진다면 결과적으로 기업 가치를 낮게 만든다. 실제로 kariar의 노조와 기업 성과 및 부실화에 관하여 연구에서는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안이 간접적으로 기업을 부실화 시킨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노조가 R&D 투자를 제한하여 수익을 감소시키고 매출액과, 종업원 증가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노조는 활동 방향에 따라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어느 한 곳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국가 경제와 각 기업, 노동자의 권리를 모두 충족하는 적절한 결의안을 주장하여야 하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대두되고 있다.
2. 본론
(1)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특징 및 원인
노동을 하여 얻는 경제적 대가의 개념이 없었던 과거의 한반도는 19세기 말 개항과 함께 근대적인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개념이 생긴다. 노동자는 수는 1911년부터 1918년까지 2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이에 따라 노동쟁의도 이전 6건 밖에 되지 않던 건이 50건으로 증가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광산, 부두 등에서 일하였으며 초기 노동분쟁의 원인은 저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이었다. 1898년 독일과 미국에게 채광권이 이양되자 광부들은 이에 불만을 가지고 시위를 일으키는데 이것이 최초의 노동 분쟁이다. 외세 척결과 반정부적인 성격을 띤 초기 노동운동의 정치적 성향은 시기의 특수성을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노동조합이 근로조건 개선과 더불어 정치적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특징은 해방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성향을 띤 노동운동이 가장 활발히 일어난 해는 1919년이다. 3.1운동과 더불어 반일 시위와 노동쟁의가 합쳐진 투쟁이 일어난다. 3월 1일 이후 3일, 7일, 9일, 27일 까지 다양한 노동자들이 시위에 참여하면서 그 해에 일어난 노동 쟁의만 84건에 이른다. 노동조합의 개념도 이 시기에 탄생해 전국각지에서 다양한 업종의 노동조합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때의 노동조합은 체계가 잘 잡혀있지 않았으며 조합 간의 연대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1920년대 일본 소유의 공장이 많이 생기며 산업이 일본 자본에 의하여 돌아가기 시작하였고, 토지 또한 일본에 편입된다. 이에 저항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뭉치게 되었고 최초의 전국적인 조직인 ‘조선노농총동맹’이 탄생한다. 가입된 단체만 260여 개에 이르는 등 굉장히 큰 규모로 발전하였으나 사회주의 계급투쟁의 성격을 띠었다. 일본에서 결성된 ‘동경조선노동동맹회’ 또한 3만 명의 조합원을 가지며 몸집을 키웠으나 역시 공산주의의 방침을 따르고 있었다. 1920년은 노동운동이 합법화되며 여러 운동가들에 의해 노동운동이 본격화되었고 원산 총파업과 같은 큰 규모의 파업 또한 진행되었다. 방직공장 등에서 일하고 있었던 여성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도 매우 열악하였기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의 파업도 진행되었다. 또한 산미증식계획으로 인해 농촌이 붕괴되며 많은 수의 농민들은 도시로 몰려와 임금 노동자로 전환된다. 이는 30년대에 더 가속화되는데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처우도 나빠지며 파업은 더 활발하게 일어난다. 일제는 이러한 노동조합들을 경찰력을 동원하여 제압하고,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하여 모든 노동활동을 금지하였다. 이로 인해 노동운동은 점점 비밀화되며 불법적으로 행해지다가 발생 수가 점점 급감하여 많은 노동조합이 해산된다. 해산된 노동운동가 중 일부는 독립운동을 펼쳤지만 일부는 공산주의에 편입되어 뜻을 이어나갔다. 비밀리에 노동운동을 지속하던 이들이 있던 한편 일제에 협력하며 노동운동을 하던 전향 운동가들도 있었다. 심지어 해외에서 활동하던 노동운동 세력도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던 노동세력들은 해방 이후 정치적 혼란 시기에 여러 단체의 형태로 변화하며 충돌한다. 공산주의를 표방하며 김일성을 추대한 좌익세력은 ‘전국노동조합전국평의회’ (이하 전평이라 칭한다.)를 결성하였지만 소련과 냉전을 지속하던 미국의 반대로 상당수의 간부들이 북으로 넘어간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우익세력은 한국 노총의 전신이 되는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을 설립한다. 1948년 최초의 정부가 수립되며 노동 3법이 공표되었다. 이것은 우리나라 노동법의 근간이 되었고, 미국식 단체교섭 제도 또한 이 시기에 도입되었다.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운동을 전개한 노동조합은 역으로 당시 정부 정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군사 권력을 통해 독재정부로 경제적 성장이 활발히 일어난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는 노동운동은 굉장히 축소되고 통제되었다. 또한 노동법이 개정되며 노사협의회가 도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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