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 조선시대 가옥의 특징과 형태
1. 소개 의 글
2. 주택의 구조
3. 공간의 배치
4. 연령에 따른 배치
5. 성문화와 공간의 배치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초포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 (자료 : 함평군청 공개자료)
조선조, 특히 중기 이후의 조선사회는 유교적인 문화가 사회 전반에 걸쳐 두루 퍼져 있었던 시기였으므로, 당시의 상류층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에 원칙으로 삼았던 것은 집안에서 유교적인 덕목을 어떻게 잘 실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으며, 이 원칙에 따라 가옥의 구조를 어떻게 하는 것이 이상적인가 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때문에 당시의 상류 가옥은 말하자면 부부가 애정을 나누고 가족의 단란함을 나누는 그런 현대적 의미의 가정이라기보다는 유교적 덕목을 잘 지키고 실천해 나가는 도량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고 할 수 있겠다. 조선조 시대에 집을 지을 때 원칙으로 삼았던 것 중 하나는 남녀유별 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서로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집을 지을 때에도 남성의 공간과 여성의 공간을 분리하였다. 집의 구조를 보아서 안채와 행랑채의 부분이 여성의 공간이고 그 나머지가 남성의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여성이란 시집을 와서 대문을 들어서면 그 후로는 평생 동안 공식적으로는 몇 번 정도밖에는 대문 밖을 나서지 않았다.
2. 공간의 배치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안채에서는 여성이, 사랑채에서는 남성이 생활하였으며, 공식적으로는 그 집안의 노부부나 젊은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젊은 부부의 성 생활에 관계된 것이다. 더욱이 당시 여성의 중요한 임무는 아이를 낳는 것이었으므로 젊은 부부의 성생활 문제는 중요하다 할 수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개 젊은 아들이 부인의 방에 드나들 수 있는 일종의 비밀 통로를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어떤 집의 경우에나 젊은 부부가 쓰는 방들은 나름대로 최단 거리에 두어 비교적 용이하게 두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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