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공찬전 소개
2.설공찬전을 둘러싼 논의
3.설공찬전 연구의 담론
1996년 서경대학교 교수인 이복규는 왕명으로 불태워 사라져 조선왕조실록에서 그 흔적만을 찾을 수 있었던 을 발굴하는데 성공한다. 그 이후에 에 대하여 역사적 자료나, 발견된 국문 본을 바탕으로 연구가 이루어진다. 지금부터 소개할 내용들은 에 관한 개략적이고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설명이다.
1. 작가
(1)채수
설공찬전의 작가 채수(蔡壽)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자는 기지(耆之), 호는 나재(懶齋)이며, 남양 부사(南陽府使) 채신보(蔡申保)의 아들이다. 1449년(세종 31년)에 나서 1515년(중종 10년)에 죽었다. 세조 14년(1468) 생원시에 합격하고, 1469년 추장문과(秋場文科)에 초시·복시·전시 3장에 장원급제하였다. 감찰(監察)을 거쳐 1470년 수찬(修撰)이 된 뒤 교리(校理)·지평(持平)·이조 정랑(吏曹正郞)을 거치면서 《세조실록(世祖實錄)》과《예종실록(睿宗實錄)》편찬에 참여하였다. 1476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으며, 1477년 응교(應敎)가 되어 임사홍(任士洪)의 비행을 탄핵하였고 1479년 남대문 중수(重修)에 참여하였다. 한편 승지를 거쳐 대사헌으로 있을 때 폐비 윤씨의 존휼을 청하다 파직되었으며, 1485년에 충청도 관찰사로 서용되었다. 하정사(賀正使) ·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를 다녀온 뒤 대사성·호조 참판이 되었으며, 1496년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에 임명되었고, 1498년에는 한성부 우윤(右尹)이 되었다. 1499년 이후 예조 참판·형조 참판·평안도 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으며 갑자사화 때는 단성(丹城)으로 유배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가담하여 분의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 4등에 책봉되고, 인천군(仁川君)에 봉해졌다. 경상도 함창(咸昌)에 은거하여 독서와 풍류로 여생을 보냈으며 서적과 산경(山經)·지지(地誌)·시문·패관소설·음률에 뛰어난 당대의 재사였다. 시호는 양정(襄靖)으로 임호서원(臨湖書院)에 제향되었고,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다.
, 이복규, 1998
, 이복규, 1999
, 소인호 , 어문논집37, 1998
, 염광호, 1997
, 이복규,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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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희병, 1993
, 황패강, 1972
황패각,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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