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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정리가 인간의 시간을 관통할 수 있는가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감정은, 이 책이 결코 수학자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묘한 안도감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다루는 주제가 인간 지성의 가장 높은 지점 중 하나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경외감이다. 이 책은 단 하나의 수학 정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 정리는 단순한 공식이나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수많은 인간의 삶과 집념, 좌절과 열정을 관통해 온 하나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제목만 놓고 보면 차갑고 건조한 수학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린다. 사이먼 싱은 이 책에서 수학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정답이 아니라 인간의 추적과 탐구로 보여 주며, 그 과정 속에서 수학이 얼마나 인간적인 학문인지를 끈질기게 증명한다.
이 독후감을 시작하며 나는, 이 책을 단순히 “페르마의 정리가 어떻게 증명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설서로 읽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왜 끝내 풀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문제에 자신의 삶을 바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장대한 답변으로 읽게 되었음을 먼저 밝히고 싶다. 왜냐하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수학적 성공담이기 이전에, 인간 집념의 역사이며, 실패와 미완의 시간이 어떻게 한 세기를 넘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지를 보여 주는 드문 기록이기 때문이다.
페르마가 책의 여백에 남긴 단 한 줄의 문장, “나는 이 정리에 대한 참으로 놀라운 증명을 발견했지만, 여백이 부족하여 여기에 적을 수 없다”라는 문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가 되었고, 이 문장은 이후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수학자들의 삶을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흔들어 놓는다. 이 독후감의 출발점 역시, 바로 이 한 문장이 지닌 이상한 힘에서 비롯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수학을 이미 증명된 결과의 집합으로 인식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으며, 교과서 속 공식들은 언제나 완성된 형태로만 존재했다. 그러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그러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수학은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대부분의 시간 동안 미완의 상태로 존재해 왔으며, 그 미완의 시간을 견디는 인간들의 이야기야말로 이 학문의 진짜 모습이라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 조금씩 드러난다.
사이먼 싱은 페르마라는 인물의 생애에서 출발하여,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들, 중세와 근대의 학자들, 그리고 현대 수학자들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정리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의 흐름을 서사적으로 엮어 낸다. 이 과정에서 수학은 결코 추상적인 기호의 세계로 고립되지 않으며, 언제나 그 시대를 살아간 인간들의 사고방식과 한계, 그리고 지적 용기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로 기능한다.
이 독후감의 첫 회차를 마무리하며 나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나에게 던진 가장 첫 번째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싶다. 인간은 왜 당장 쓸모가 없어 보이는 문제에 그토록 집요하게 매달리는가, 그리고 그 집요함은 과연 무엇을 남기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이후의 독서 과정 내내 반복해서 모습을 바꾸며 등장하고, 결국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중심 사유로 자리 잡게 된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이 책이 예고하는 여정은 이미 충분히 길고 깊으며, 그 여정 속에서 수학은 계산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과 열망이 축적된 하나의 서사로 다시 태어난다.
― 여백에 남겨진 한 문장과 17세기 수학자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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