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Ⅱ. 우리나라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
Ⅲ. 반대 vs 찬성
Ⅳ. 다른 나라의 양심적 병역 거부와 대체 복무
Ⅴ. 마치며
이런 헌재의 발표가 있은 뒤로부터 지금까지 양심적 병역거부로 감옥에 있는 사람은 765명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군복 대신 작업복을, 총 대신 망치를 달라.”라고 말하며 전쟁 반대와 군 대체입법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입영통지서를 찢은 후 반전평화운동을 벌여온 사회당 이원표씨가 지난 2일 구속됐다.
법을 어기면서 까지 왜 그들은 병역을 거부하는 것일까? 쉽게라기보다는 그래도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이다. 그들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서 병역거부를 해왔고 하고 있다. 또 다른 종교인 불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 자신의 평화적 신념에 따라서 하는 사람 등 각자 자기의 믿음에 따라서 병역 거부를 한다.
Ⅱ. 우리나라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
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역사는 일제 시대의 신사참배 거부 및 징병거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한국전쟁 이후 국민개병주의에 의한 징병제도가 정착되면서 이루어졌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는 군 입영 후 집총거부자의 경우는 ‘항명죄’가 적용되어 군형법 44조에 따라, 입영거부자의 경우 ‘병역 기피죄’가 적용되어 병역법 87, 88조에 따라 대부분 ‘3년 이하의 징역형 선고’로 처벌되었다. 그러나 군부독재 시절은 물론 문민정부시절인 90년대 중, 후반까지도 가중처벌로 3년 이상을 선고받거나, 35세까지 징집가능연령을 근거로 한 사람에게 2~3차례 실형이 선고된 사례도 비일비재하였다.
‘여호와의 증인’을 중심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끊임없이 생겨났으며,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징병제의 존속과 함께 꾸준히 늘어났다. 항명죄 혹은 병역기피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무려 1만여명에 달하고, 현재 1,600여명 가량의 젊은이들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으며 매년 600여명 정도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30년의 군사독재와 50년의 징병제를 겪은 병영국가인 한국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정당한 하나의 권리로 인정받기 보다는 또 하나의 은폐된 그늘로 현대사에 남아있는 것이다.
한편, 과거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던 선배들은 군 입대를 거부하고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병역거부 아닌 거부를 해야 했다. 또한 강제징집을 피해가며 투쟁을 해야 했고, 전방입소를 거부하며 분신을 할 정도로 치열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개인의 양심을 위해 병역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양심을 건 모든 행위가 불법인, 폭압적인 상황 속에서 양심의 자유는 국가와 개인 혹은 단체의 직접적인 대결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태양씨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하기 이전까지 한국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인들의 신앙적 신념, 종교적 자유의 문제로 국한되었다. 한국전쟁을 통해 미소열강의 냉전적 대결의 대리전쟁터가 되어야 했던 한반도에서 반백년 넘게 지속되어 온 군사주의 체제는 군대에 대한 신성화 작업과 동시에 진행되었으며 말 그대로 하나의 성역으로 존재해 왔던 것이다.
이제 2001년 12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한 오태양씨에 이어 2002년 7월 9일에는 유호근씨가 전쟁반대, 평화실현을 이유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특정 종교에만 국한시켜 개인의 양심을 처벌하던 당연한 관념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산업화와 군사독재 속에서 한국의 사회는 하나의 커다란 병영국가로 스스로를 형성해왔다. 존엄한 양심의 자유를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미명하에 억압해왔던 과거의 역사 속에서 이미 우리는 길들여져 쉽사리 과거의 사슬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Ⅲ. 반대 vs 찬성
1.양심적 병역 거부의 반대의 논리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반대 논리는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 감정적인 내용이거나 종교적인 교리 다툼이 많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를 위한 교양자료 - http://withoutwar.org
한국대표토론한마당 - http://hantoma.hani.co.kr/main.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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