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성차별은 왜 ‘사회’를 넘어선 ‘정치’인가
2.1.1. 시야를 열어라, ‘계급’이 보인다
2.1.2. 국가와 친한 사람, 덜 친한 사람
2.1.3.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2.2. 한국어와 영어에 나타난 성차별의 사례
2.2.1. 언어로 굴절되는 세계
2.2.2. 사례
2.3. 조선 시대, 언어 교육에서 나타난 성차별 사례
2.4. 참고문헌
이 부분은 수업 당시 발표 내용에 대해 ‘정치’가 아닌 ‘사회’라는 지적이 있어, 그에 대한 반박 격으로 넣은 글이다. 필자는 일차적으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해결하는 과정이 정치라고 생각한다. 정치와 사회가 어떻게 그렇게 이분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이차적으로는 지금의 성차별이 단지 사회적인 측면이 아니라, 마치 ‘계급’처럼 굳혀지며 정치·경제적으로도 충분히 이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굳이 필요하지 않다면 읽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2.1.1. 시야를 열어라, ‘계급’이 보인다
지금, 여-남은 서로 평등한가. 5년에 한 번 대통령에 대한 표를 행사하거나 대학에 다닐 수 있게 됐다는 것들만으로 평등이 이루어졌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우리 사회는 평등하다’라는 명제를 참이라 믿고 싶어 한다. 꽤나 달콤하고 온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성들 중 많은 수가 ‘여-남이 평등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불평등 따위 알지 못한다고, 이제는 자신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있다고.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비율이 우리학교 여학생일수록 두드러지며, 지방 대학에 다니는 여자 친구들이 차별을 더욱 절실히 이야기하는 것은, 그저 우연이었을까.
이상한 일이다. 왜 어떤 여성은 이제 더 이상 여남 간의 차별이 없다 하는데, 어떤 여성은 그 차별이 엄청나다 할까. 그렇다면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 같은 공간,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 서로의 경험에는 과연 이처럼 현저한 차이가 존재할까?
길을 가다보면 어김없이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반(半)나체 상태의 여성 사진, 안마방 광고. ‘성욕’이란 이름으로 남성에게는 음으로 허용되어 버리는 성매매. 신기하게도 월등히 여성 피해자가 다수인 수많은 성폭력 사건들(대체 왜?). 직업과는 상관없이 유독, 작고 마른 몸뚱아리와 예쁜 얼굴로만 평가받는 여성(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세 번 정도는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장에서 강제되는 화장, 립스틱, 하이힐, 치마.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결혼과 양육이 일단은 부담될 수밖에 없는 여성. ‘남편의 수입이 있다’는 명목 하에 자신이 한 일보다 싼 임금을 받으며 부차화 되는 이 시대의 여성 비정규직…
이것은 단지 ‘사회적인 차별’의 정도가 아니다. 그 안에는 ‘남성’이라는 계급이 있으며, ‘여성’이라는 계급도 존재한다. 사회를 이루는 각 개개인으로서의 대우가 아니라, 단지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집단에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대우들이 존재한다. 자신의 성만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일부분 정해지며, 그것은 모든 ‘여성(혹은 남성)’에 적용될 수 있기에 ‘계급’으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둘 중 어느 부류에 속하느냐에 따라 사회의 major가 되기도 하고 minor가 되기도 한다. 이는 틀림없는 ‘계급’이다.
계급의 문제는 엄연히 정치적인 문제이다. 일단 계급이 존재하면 착취하는 계층과 착취당하는 계층이 생겨난다. 때로는 이것이 국가나 가족 등에 이득이 되기도 한다. 사회의 정치나 경제 구조에서 이 ‘계층 분리’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며 끊임없이 재생산하기도 한다는 것
린지 저먼, 『여성과 마르크스주의』, 책갈피, 2007.
미셀 바렛, 『페미니즘과 계급정치학』, 여성사, 1995.
오욱환, “여성교육학의 필연성과 한계성”, 교육사회학연구, 제1권 제2호 (발행 1991년)
장미경, 『페미니즘의 이론과 정치』, 문화과학사, 1999.
정희진,『페미니즘의 도전: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교양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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