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 코소보 독립 선언
2. 사건의 원인 분석
1) 코소보는 어떤 곳인가?
2) 코소보의 독립은 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가?
3) 세계는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는가?
4) 코소보 독립선언에 따른 각국의 영향은 어떠한가?
3. 사건에 대한 이상적인 대안
4. 사건의 결론
1. 사건의 발생
2008년 2월 17일 코소보는 국제적인 합의 없이 세르비아로부터의 일방적인 독립을 선언했다. 총리인 하심 타치가 코소보 의회에서 독립 선언문을 낭독한 가운데, 그는 코소보가 모든 민족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민주국가가 될 것임을 천명했다. 그리고 이에 코소보 의회는 독립 선언을 승인했다(선언문 영어 전문). 코소보 의회에 의해 승인받은 독립선언은 유엔의 계획에 따라 설정된 제한적 독립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코소보나 그 일부는 다른 국가에 편입될 수 없으며 국제기구에 의해 감독을 받아야하고, 코소보 군대의 운용도 제한적이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대다수의 국가들이 코소보 독립을 지지하고 있는 가운데, 세르비아와 러시아, 스페인는 반대를, 그리스, 루마니아 등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한편 유럽 연합은 2000명 규모의 경찰과 판사 등 공무원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국제 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회의에서 러시아는 코소보의 독립선언이 법적으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코소보의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의 충돌 가능성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코소보의 다수 민족인 알바니아계는 불꽃놀이를 밤늦게까지 하며 독립을 자축했다.
2. 사건의 원인 분석
1) 코소보는 어떤 곳인가?
코소보는 역사적으로 제1차 불가리아 제국, 비잔티움 제국, 오스만 제국, 유고슬라비아, 세르비아의 영토였다. 1389년부터 이슬람 국가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다가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립한 코소보는 세르비아사람들에게는 오스만투르크에 맞서 항전한 성지로 여겨졌다. 소수의 세르비아인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알바니아 사람들을 문화탄압, 일자리 박탈, 인종정화 라는 이름의 학살로 탄압했으며, 결국 1999년 코소보 전쟁으로 민족갈등이 폭발했다. 나토의 개입으로 결국 UN의 통치를 받는 지역이 되었다. 원래 1971년부터 알바니아인들에게 자치가 허용된 지구인데 1989년 공산주의사멸로 민족주의가 대두되어 각지에서 독립을 외치자 세르비아정부(밀로세비치)가 자치권을 박탈하였다.
2) 코소보의 독립은 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가?
세르비아 공화국의 자치주였던 코소보는 여러 민족들로 구성된 유고연방에 속해 있으며 역사적으로 갈등과 대립이 매우 심한 지역이다. 그중에서 세르비아인들이 코소보에 집착하는 이유는 코소보가 세르비아인들이 14세기에 건설하였던 세르비아왕국의 중심지였고 유서 깊은 종교유적이 남아 있는 지역이면서 동시에 1398년에 오스만 터키와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10여만명의 세르비아인들이 전사한 지역으로서 그야말로 세르비아인들의 원한이 서려있는 성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스만 터키에 패배한 세르비아인들은 북쪽으로 쫓겨났고 회교로 개종한 알바니안들이 이곳에 정착했던 것이다. 현재 알바니안들이 코소보인구의 대부분(알바니안 77%, 세르비안 13% 그 외 10%)을 차지하고 있어 만약 코소보가 알바니안들에 의해 독립되면 인접국인 알바니아 공화국에 귀속될 우려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3) 세계는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는가?
주변 이해관계에 따라 매우 복잡한 사안이기 때문에 세계의 의견은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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