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 스모에 대하여..
2. 개최시기 및 명칭
3. 경기장
4. 복장(まわし란) 과 머리모양
5. 相撲(すもう)의 관계자
6. 相撲(すもう)경기
7. 相撲(すもう)경기로 본 일본
(1) 古代: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 「日本書紀」에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서기 642년에 일본 왕이 백제에서 온 사신을 환대하기 위하여 병사들 가운데 장사를 뽑아 궁궐 안에서 스모를 공연했다는 기록이 있다. (자연발생적인 힘겨루기 놀이)
(2) 나라(奈良)시대 : 그 후에 스모는 궁중에서 정기적인 의례로 행해지게 되었다. 중앙집권의 강화를 위해서 왕은 신하를 불러서 세치에(節會)라는 잔치를 하였는데, 이 節會의 하나가 相撲節會었다.(조정행사 왕권의 힘의 과시)
(3) 카마쿠라(鎌倉)막부 : 중세에 이르러 권력이 조정으로부터 무사들에게로 넘어가자 중앙 집권적 힘의 상징이던 스모도 그 성격이 달라지게 된다. 이 시기의 스모는 무사들의 전쟁을 위한 연습이나 일상적 신체단련등 실용적인 의미가 강조되었다. 전국시대에는 영주가 스모를 장려하였으며 무사들의 필수무술로 인식되었다. (실전무술용 전문적)
(4)에도(江戶)시대 : 이 당시의 스모는 전쟁이 끝난 후이므로 전국시대와 같은 전쟁을 위한 실전용에서 그 성격이 변화하게 된다. 경기진행에 제한을 두어 점차 실전무술에서 스포츠의 의미가 가미되어 대중오락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대중오락 직업 리키시(力士)가 등장)
(현재 일본 스모 협회의 기원이 되는 그룹형성)
(5) 메이지유신(明治維新): 明治維新은 일본의 근대화의 기점으로 일본사회에 큰 변화를 주었다. 새로운 정치제도에 의해 젊은 관리로부터 스모란 벌거숭이로 사람들 앞에서 추는 미개한 춤'이라고 비하되었고, 1871년에는 리키시(力士)들에게도 단발령이 내려져서 力士들의 독특한 상투머리(ちょんまげ)를 잘라야만 했다. (스모의 침체기)
(6) 스모의 부흥기: 움추려 들었던 相撲가 인기를 다시 회복하게 된 시점은 1889년 천황이 직접 스모를 관람하던 때부터이다. 그리고 1909년에 스모 전용경기장인「國技館」이 도쿄시내(兩國)에 건립되어(13,000명수용) 스모는 바야흐로 대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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