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황사] 분황사
2. 분황사에 얽힌 전설과 신화
3. 참고자료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佛國寺)의 말사이다. 634년(선덕여왕 3) 용궁(龍宮)의 북쪽에 건립하였다. 643년 당(唐)나라에서 돌아온 자장(慈藏)이 선덕여왕의 명으로 머물렀으며, 원효(元曉)도 교학(敎學)을 펴게 됨에 따라 분황사는 법성종(法性宗)의 근본도량이 되었다. 솔거(率居)가 그린 관음보살상이 있었으며, 좌전(左殿) 북쪽 벽에 있었던 천수대비(千手大悲) 그림은 희명(希明)의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로도 유명하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약사여래상을 모신 보광전(普光殿)과 승당(僧堂)․종각(鐘閣) 등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국보 제30호인 분황사석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인 화쟁국사비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호인 석정(石井)이 있다. 이 가운데 화쟁국사비의 비편은 비신(碑身)을 받쳤던 비대(碑臺)가 절 근처에서 발견되어 김정희(金正喜)가 이를 확인하였고, 김정희 친필이 음각되어 있다. 석정은 삼룡변어정(三龍變魚井)이라고 불리는 신라시대의 우물이다. 이 밖에도 석등․대석과 많은 초석들이 남아 있으며, 1974년 발굴조사에서 금동보살입상과 귀면와(鬼面瓦)를 비롯한 신라 및 고려시대의 와당 등이 발견되었다.
이 절에는 775년(경덕왕 14) 본피부(本彼部)의 강고내미(强古乃未)가 구리 30만 6700근을 들여 만들었다는 약사여래동상이 있었다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원효(元曉)가 이곳에서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썼고,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은 신화(神畵)로 일컬어졌다. 또한 절의 좌전에 있었던 천수대비(千手大悲) 벽화는 매우 영험이 있어서 눈 먼 여자아이가 노래를 지어 빌었더니 눈을 뜨게 되었다고 전한다.
답사여행의 길잡이(경주), 한국문화유산 답사회 공저,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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