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분학의_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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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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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분학의_유래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미분학의 발견의 배경
2.미분학의 발전
3.미분학의 발견의 의미와 그 기원
4.라이프니츠와 뉴턴의 미적분 발견과 선취권 싸움
5.뉴턴의 미적분학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의 차이
본문내용
1.미분학의 발견의 배경

무한의 개념이 중세를 거쳐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어 갔는데, 이는 기독교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성직자들의 노고이다. 유한한 인간의 세계에서 신의 존재를 무한으로 설명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유클리드의 유한하며 정적인 세계가 데카르트에 의해 해석기하학으로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뉴턴시대에 이르러 운동을 설명하려는 움직임이 학계와 사회에 만연 되었다. 뉴턴이 유율법을 만들어 이를 설명하였고 이 미분적분의 효용성은 많은 학자들을 매료 시켰다.(사실 미적분의 창시자로 뉴턴 등을 꼽지만 그 전부터 구적법과 미분 등이 논의 되어왔었다. 다만 선배학자들이 미분과 적분이 역연산 관계임을 깨닫지 못한데 반해 뉴턴은 이 관계를 이해하고 이를 이론으로 확립시키는데 공헌하였다.) 그 동안 풀리지 않았던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고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데 운동을 포착하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신진 물리학자들이 대거 등장하며 미적분이 100년간 유럽을 활기차게 만들었다. 또 이 때 시작된 미분 방정식은 자연세계의 질서를 한가지씩 모델화 하여 수식으로 명료하게 설명되게 만들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뉴턴은 17세기에 인공위성이 지구궤도를 돌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계산해 냈다. 그러나 이 미적분은 기초가 없었다. 이로 인해 곧 많은 모순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뉴턴은 막연하게 접근으로 극한의 개념을 대신하였다. 이에 코시는 엄밀한 극한의 정의를 도입하였다. 이로 인해 수학은 한층 더 견고한 토대 위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바이어스트라스는 이 극한 개념을 바탕으로 그 동안 계속되어온 무리수에 대한 논의를 매듭짓고 실수체계를 확립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무한개념으로 극한개념이 성립되고 이는 미적분의 논리적 근거가 되었다.

2.미분학의 발전

1)로베르발(Gilles Persone de Roberval, 1602-1675), 토리첼리(Evangelista Torricelli, 1608-1647)

곡선에 대한 접선을 그리는 일반적인 접근 방법을 개발하였다. 이들은 곡선을 한 점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여기에서 점의 운동은 이미 알고 있는 두 운동의 합성을 보았다. 그리하여 이미 알려진 두 운동의 속도 벡터들의 합성은 그 곡선의 접선이 된다는 것이다.

2)데카르트

어떤 곡선에 대한 접선을 작도하는 또 다른 방법을 그의 책 '기하학(1637)'의 둘째 부분에 실었다. 그는 이 방법을 그의 이름이 붙여진 사차 달걀(quartic oval)을 포함해서 서로 다른 여러 가지 곡선에 적용했지만, 그 방법은 너무 대수적 곡선에만 국한되며 그와 같은 경우에도 어려운 대수학에 너무 귀착된다.

3)케플러(Johannes Keple)

케플러는 함수의 증분은 통상적인 최대·최소값의 근방에서 거의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는 사실을 관찰했으며, 페리마는 이 사실을 최대·최소값을 결정하는 과정으로 해석했다.

4)페르마(Pierre de Fermat)

진정한 미분법의 예견은 페르마에 의해 나타나는데, 그는 비에트의 표기법을 사용하여 함수(식생략)의 통상적인 최대, 최소값을 찾는 전통적인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의 연구 성과 가운데 미적분에 관한 업적은 연속곡선에 접선을 긋는 방법으로서 제기된 이 문제는 페르마를 '극값의 문제'로 유도하여 미분의 개념에 도달시킨 것이며, 미적분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뉴턴이나 라이프니츠가 태어나기 10여 년 전에 이런 성과가 얻어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 페르마는 또한 데카르트(직교좌표) 방정식이 주어진 곡선 위의 한 점을 지나는 접선을 찾는 일반적인 과정을 고안해 내었다. 그의 생각은 그 점에 대한 '접선영'을 찾는 방법이다. 이러한 자신의 방법을 이용하여 페르마는 타원, 사이클로이드(cycloid), 질주선(cissoid), 나사선(conchoid), 할선 곡선(quadratrix), 데카르트의 엽상 곡선(folium) 등의 접선을 구했다. 그렇지만 페르마는(식생략)의 도함수가 0이 되는 것은 통상적인 최대·최소값이 되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또, 페르마의 방법은 최대값과 최소값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미분법과 관련하여 극대극소(極大極小)의 문제를 연구하고, 이를 광학(光學)에 응용하여 그는 '최단 시간의 원리(페르마의 원리)'를 발견했다. 또 빛의 반사·굴절의 법칙을 유도해냈고, 후년의 역학 전개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