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전태일에 대해서
Ⅱ. 본론
1. 전태일의 삶
2. 전태일의 분신
3. 노동자의 현실
4. 한국사에 미친 영향
Ⅲ. 결론
1970년 11월 13일은 우리 역사에서 잊지 못할,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될 분노를 희망으로 바꾸는 큰 의미를 지닌 날이다. 우리는 보통 전태일을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열사라 기억하지만, 그 또한 평범한 스무 두 살의 청년이었다. 그러한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Ⅱ. 본론
1. 전태일의 삶
1) 어린시절
전태일은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전상수씨는 봉제 노동자였는데 계속되는 실패에 어느새 폭음과 술주정이 버릇처럼 되어버렸다. 어머니 이소선 씨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명석한 두뇌와 강인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었다.
전태일이 여섯 살 되던 1954년, 전태일의 가족은 무작정 상경하게 된다.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전태일은 남대문 국민 학교를 그만두고 신문팔이로 나서게 된다. 또 신문팔이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해야만 했다. 1963년에는 가족들이 다시 대구에 내려와서 살게 되는데, 전태일은 이때를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회상하였다. 그것은 전태일이 청옥 고등 공민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반대로 전태일은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2) 청년시절
1964년 전태일은 16살의 나이로 평화시장에 첫 발을 디디게 된다. 한 달 월급 1500원, 일당 50원, 14시간 노동의 하루 일당이 커피 한 잔 값밖에 안되는 저임금이었지만 전태일은 그런 것을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원래 미싱 일에 경험이 있었던 터라 빨리 기술을 인정받아 곧 월급도 한 달에 3000원을 타게 되고, 잔심부름을 안 해도 되는 미싱 보조가 되었다. 또한 이즈음에 가족과도 함께 다시 모여서 살게 되었다. 1965년, 전태일이 17세일 때 미싱사로 취직하게 된다. 그는 기술을 배워 가족들을 책임지고, 또 배움의 꿈을 이루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평화시장의 지옥 같은 처참한 노동 현실을 느껴야만 했다. 평화시장의 피복 공장은 고도로 노동 집약적인 동시에 대부분이 영세기업이었는데, 평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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