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진로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던 나의 경우와는 달리 대부분의 친구들은 과연 자신이 무엇을 해야만 할 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확신도 가지지도 못하고 오직 시험에만 매달렸다. 전교 1등을 하는 친구와 비교적 하위권에 있던 친구 모두 꿈은 불확실했지만, 목표는 같았다. 이름만 들어도 알아주는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으로 말이다. 나 또한 분야만을 정해놓고 있었을 뿐, 그들과 목표는 동일했다. 수능이라는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 울고 가슴을 치고 안타까워했지만 결국 1년이 지난 지금, 각자의 자리를 찾아 적응하고 생활하고 있다. 물론 우리 모두의 꿈은 선택받은 몇몇의 차지였던, 그야말로 꿈과 같은 허황된 실체였다. 그 한번의 기회가 아쉽고, 그렇게 결정지어지는 인생이란 것의 억울함에 다시 한 번 그 고통의 시간을 제 발로 찾아 들어가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대개는 그렇게 체념하고 안주하고 적응하며 살아갔다.
이런 일들이 한차례 머릿속을 스쳐간 것은 애써 잊고 살던 지난 한 해간 때문이 아니라, 오랜만의 친구들을 꽤 많이 재회했던 요즘의 경험에서부터이다. 이미 자신들의 영역 안에서 일년이라는 시간을 살아낸 친구들은 전과 같지 않았다. 소위 지방대생들과 수도권대생들의 문화차이나 생활차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의 간극은 오랜만의 정겨운 모임의 자리에서마저 사사건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벽이라는 게 눈 앞에서 쌓아올려지는 것을 느끼면서 더 답답했던 것은 그 사실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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