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전통시대의 죄와 형벌
1. 들어가며
2. 누가 재판을 하였는가?
3. 재판절차
4. 조선의 형벌제도
5. 조선후기의 재판과 형벌제도의 변화
6. 나가며
재판과 이에 따른 판결의 집행은 한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행사되는 합법이라는 이름의 강제력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과 방식은 한 사회의 성격과 그 사회에서 살고 있는 인민의 지위를 잘 보여준다. 또한 한 사회체제, 국가권력의 성격이 변화할 때 국가권력과 인민의 관계가 달라지며 그에 따라 재판제도도 크게 바뀐다. 따라서 재판제도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그 사회의 국가권력의 성격과 사회체제, 그 속에 살고 있는 인민의 사회적 지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의 성격이 다른 조선시대의 재판제도를 통해서 당시에 살았던 인민의 사회적인 지위를 알아보고, 재판제도가 한 사회의 성격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파악해보고자 한다.
2. 누가 재판을 하였는가?
조선시대에 재판을 주관한 것은 봉건국가 권력의 담당자인 국왕을 비롯한 봉건지배층이었다. 봉건지배층은 인민을 다스리는데 언제나 덕과 예에 의한 교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재판과 형벌로 인민을 다스렸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재판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가 재판을 하는가 보다 누가 형벌을 내릴 수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재판권은 형벌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지닌 국가기관, 지배층이 직접 행사했다. 국가기관과 지배층의 재판권은 그들이 내릴 수 있는 형벌의 종류에 따라 등급이 나뉘었다. 형사사건의 경우는 등급이 높은 쪽이 좀더 무거운 형벌에 해당하는 범죄를 다룰 수 있었고, 민사사건의 범주에 드는 재판에도 흔히 형벌을 썼으며, 재판기관의 등급이 높은 쪽이 상급심의 역할을 했다.
조선국가의 최고의 형벌권자는 국왕이었다. 따라서 당연히 그는 최고, 최종의 재판권자 였으며, 사형은 국왕만이 내릴 수 있는 형벌이었다. 또한 국왕은 기존의 모든 판결을 뒤집고 최종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었고, 백성들이 재판의 억울함을 신문고를 통해 호소하면 재심리를 지시하기도 하였다. 가장 중요한 범죄에 대한 재판- 반란, 역보죄, 강상죄 등- 은 처음부터 국왕이 재판에 관여하였다. 국왕 다음으로 높은 형벌권을 지녔던 기관은 형조와 개성부, 각도의 관찰사였다. 이들은 사형 다음으로 중한 형벌인 유배형까지를 판결하고 집행하였다. 태형 이하는 모든 지방 군현의 수령, 각 아문에서 직접 판결을 내리고 집행하였는데, 다만 백성을 가두고 심리하는 기관에는 제한을 두었다. 이 밖에도 관리 신분에 있지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