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삼국통일을 바라보는 남북한의 시각비교
Ⅱ. 본문
1) 근대 이전의 견해들
2) 북한의 인식
3) 남한의 인식
Ⅲ. 나오며.
신라는 660년 백제를 멸한 이후에 668년에 고구려를 쓰러트리면서 삼국을 병합하였다. 삼국 중에 가장 뒤쳐졌던 나라로 보이던 신라가 삼국을 통합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점이다. 비록 외세를 끌어들였고 반도적 통일이라는 비난을 면하기는 힘들지만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쓰러트렸다는 점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통합을 바라보는 시각은 간단하지만은 않다. 신라의 삼국병합 자체가 한계를 지녔기에, 만약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이후의 역사를 통일신라라고 설명한다면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평가되는 발해를 우리의 역사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낳게되기 때문이다. 역사가 진리를 밝히는 학문이라고 하나 현실을 무시할 수 없고, 실지로도 그것에 의하여 많은 해석의 변화를 겪게 된다.
이 글에서는 위에서 말한 거창한 학문적 진리가 어떻고, 역사를 어떻게 봐야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려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의 능력이 그것에 미치지 못할 뿐더러 이번 세미나 주제를 훨씬 벗어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미씽링크 첫 세미나로 삼국통일을 바라보는 남북한의 시각 비교라는 논란이 있을 수 있고 결코 쉽기만 한 주제도 아닌 것으로 잡은 이유는, 무조건적으로 북한의 역사학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똑같은 사실에 대하여 아주 큰 견해차이를 지니고 있는 남북한 학계의 의견을 비교해 봄으로써 오늘날 역사학의 현상들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갖아보자는 취지에서 위와 같은 주제를 잡게 된 것이다.
먼저 근대 이전에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전통적인 의견에는 어떠한 것들이 존재하였는가에 대하여 알아본 후에 남북한의 삼국통일에 대한 본격적인 비교에 들어가기로 하겠다.
내용이 다소 지루할 수도 있고 필자의 글 솜씨와 지식의 부족으로 좋은 글은 못 되지만 문제제기라는 차원에서 너그러이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Ⅱ. 본문
1) 근대 이전의 견해들
먼저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한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신라 경주 중심의 골품귀족은 삼한일통의식(三韓一統意識)의 영향을 말미암아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의 사실을 자기만족적인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고려시대의 인식내용은 『삼국사기』에 일정하게 반영되어 있다. 삼국사기의 편찬자인 김부식은 신라계의 문벌귀족으로서 신라삼국통일이 갖는 긍정적인 의미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이식은 조선시대 전기의 대표적 편찬사서인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와 『동국통감』(東國通鑑)에 그대로 계승 심화되고 있다.
결국 조선 전기까지의 긍정론적인 인식경향은 그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만 있었을 뿐, 골격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었던 셈이다. 이와 같이 전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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