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요약][고대사] 김부식과 삼국사기
《삼국사기》는 거의 3년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1145년에 仁宗에게 바쳤다. 그것은 즉각적으로 당시의 가장 결정적인 역사책으로 받아들여졌고 수십년 후에는 중국에서도 읽히게 되었다. 1세기 후에 一然이 《三國遺事》를 쓸 때 다른 많은 역사가들이 그러한 것과 같이 《삼국사기》에 크게 의지하였다.
《삼국사기》에 대한 최초의 중요한 비판은 고려말 조선초에 나왔다. 여러학자들은 김부식의 역사서술 방법을 비판하였다. 조선왕조의 후기에는 《삼국사기》의 부정확성과 여러자료들을 폭넓게 선택하여 참고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였다. 20세기의 학자들은 보다 더 심한 비판을 가하였다. 현재의 역사가들도 또한 《삼국사기》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김부식의 역사관은 분단상태에 있는 20세기의 한국에 새로운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김부식의 신라중심주의가 한국사상 북쪽에 있던 勃海를 무시하였고 고려의 정통성의 근거로 신라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다루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들이 《삼국사기》의 가치와 편찬자들의 의도를 낮게 평가하도록 할 수는 없다. 유교사상에 완전히 숙달되어 있고 광범한 동서와 학식을 갖춘《삼국사기》의 편찬자들은 이 책을 통하여 한국의 실체를 밝히려는 진지한 관심에 더하여 지적인 성숙함과 국제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김부식의 생애에 있어 이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