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문] 까미유 끌로델
마음만 굳게 먹으면 성공하여 부와 명예를 얻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삶이었다.
까미유 끌로델이 어째서 로댕과의 파멸된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스스로 파멸된 삶을 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영화속에서 가족관계속의 까미유 끌로델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녀의 불안정한 잠재의식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짧게나마 나왔다시피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가 태어났을 당시, 프랑스에서도 남아 선호사상이 우선시 되던 시대였다.
그녀의 어머니 루이즈 아테네즈 세르보는 첫째 아들을 낳았지만, 불행하게도 첫째는 오래가지 못해 죽고만다. 그 죽음에 대한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카미유를 낳았지만 아들을 기대했던 어머니는 카미유를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질 못한다.
"첫 애가 죽지만 않았어도, 낳지 않았을 거야. 절대로 안 낳았어. 그녀는 애처럼 행동했어.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내 남편을 적으로 돌려버렸어!! 왜 우리 모두가 그 쓸데없는 일(그녀의 조각) 때문에 희생을 해야하지?"
영화 속 한 대사이다.
어머니는 딸이 여자로서의 삶을 살기를 바랬지만 까미유 끌로델은 당시 남자들의 일터로 여겨졌던 조각가의 길을 걸어갔다.
그래도 어머니인데 모성애 정도의 사랑은 있지 않았을까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작품활동에 미쳐있는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음에는 틀림없다.
반면 까미유의 아버지 루이즈프로스페 클로델은 어머니가 줄 수 있는 사랑 그 이상으로 까미유를 사랑해주었다.
"까미유는 그런 애가 아니야! 다만 자기가 믿는 걸, 포기할 수 없는거지. 성질이 급한 건 열정적이기 때문이오. 까미유가 충동적인 건 주관이 뚜렷하기 때문이오."
아버지는 그녀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울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은 가장 원초적인 사랑이 아닐까싶다.
그녀는 자존심과 열정과 주관이 강한 여성이었지만 결국 모든 것은 그녀 내면의 비어버린 원초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의 공백과 그것을 갈구하는 욕망, 그리고 '사랑받지 못함'과 '사랑받을 수 없음에 대한 절망'이 혼란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의 딸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그녀의 아버지는 언제나, 그녀의 편이 되어주지만, 그녀를 향한 독단적인 아버지의 사랑은 그녀 자신의 형제들에게 무언의 희생이 강요되고 가족관계는 항상 경직되어있었다.
그녀의 재능은 그녀를 불행하게 했을 뿐이다. 그것은 결국 그녀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삶'보단 결국 '죽음에의 표현'이 더 가까웠기 때문이고, 죽음의 어두운 본질자체를 표현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시대는 달갑지 않았다.
그걸 카미유 본인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로댕과의 결별 이후 그녀의 삶은 어둠의 연속이었고 그녀의 작품 또한 순리대로 그 어둠을 따라갔을 뿐이다.
로댕에게는 이미 그와 20년을 함께해온 조강지처가 있었다.
클로델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뵈레부인을 클로델에게서 질투를 해 로댕을 뺏은 멍청한

분야